'민족의 영웅' 안중근. 과연 그를 어떻게 그려낼까 사뭇 궁금했다. '안중근'. 이름 석자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가슴에 울림을 선사하는 인물. 존재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한민족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선사한다. 이런 안중근을 현빈이 맡아 연기한다 하니, 참으로 궁금했다.
영화 '하얼빈'(감독 우민호)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이다. 12월 24일 개봉.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안중근이 시작과 끝이다. 안중근(현빈)이 하얼빈을 향해 달려가는, 일제강점기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한민족의 열망을 담아 일본의 늙은 늑대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를 처단하기 위해 독립군과 함께 하는 여정이 담겼다.
'하얼빈'은 안중근 장군을 소재로 한 기존의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 드라마로는 1996년 3월 1일 방송된 '안중근'(SBS, 3부작), 영화로는 '도마 안중근'(2004), '영웅'(2022) 등이 있지만 접근방식이 차별화된다. 특히 '이번엔 안중근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안중근에 현빈은 제격이었는가'라는 질문에 "이전과 달랐고, 안중근에 현빈이 딱이었다"고 답할 수 있다. "그래, 현빈이어서 안중근을 만났고, 안중근의 뜻을 더 숭고하게 받아들였다."
현빈은 '하얼빈'을 통해 이전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한 공감력을 뽐냈다. "왜 잘해?"라고 물을 수 있겠다. 감독이 만들어 가는 스토리, 그 안에서 현빈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몰입도가 높다. '아, 현빈이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의 혼을 끌어올린 성취였다.
현빈은 드라마 '아일랜드' '내 이름은 김삼순' '눈의 여왕' '그들이 사는 세상' '시크릿 가든' '하이드 지킬, 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사랑의 불시착' 등을 통해 스타 자리를 확고히 했다. 또 영화 '돌려차기' '백만장자의 첫사랑' '나는 행복합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만추' '역린' '공조' '꾼' '협상' '창궐' '공조2: 인터내셔날' '교섭' 등에 출연해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했다. 그간 작품 속 현빈은 로맨스, 사극, 액션 등 장르를 불문하고 자신의 역량을 뽐내왔다. 물론 작품에 따라 대중의 호불호가 엇갈리기도 했으나 '현빈만한 배우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현빈'이라 하면, 그래도 '로맨스 배우'가 대중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하얼빈'을 접한다면, '하얼빈' '안중근'으로 현빈을 떠올리게 될 듯하다.
안중근으로 변신한 현빈은 감정과 표정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연기를 펼친다. 위압감이 아닌, 공감과 울림으로 압도된다. 그의 전작을 통틀어 '현빈이 이런 연기를 했던가?'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동시에 "와"라는 감탄사가 터진다. 이유가 있다.
'하얼빈'에서 안중근은 교과서에서나 봤을 법한 단순한 '영웅 안중근'이 아니었다. 극 초반에도 나오는 스토리지만, 안중근이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사실과 이로 인해 죽은 독립군 동지에 대한 죄책감에 고뇌한다. 꽁꽁 얼어붙은 강 위를 걸으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그렇지만 대의를 버릴 수 없는 그의 숙명은 위대하게 다가온다. 꽁꽁 얼어붙은 그 강처럼. 이후 극 중반을 넘어 결말로, 안중근과 독립군이 하얼빈으로 향하는 전개에서 현빈은 자신의 연기에 방점을 찍는다. 거듭되는 위협 속에서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뇌하는 현빈의 표정 연기는 숨죽여 지켜보게 된다. 강력하게 절제된 슬픔의 연기는 안중근의 영웅적 모습 외에 인간적 면모를 엿보게 한다. 영웅이지만 한편으로는 고독했던 대한민국 청년 안중근의 내면을 현빈이 선굵게 그려냈다. 빙의, 어쩌면 이 단어가 '하얼빈' 속 안중근을 그려낸 현빈에게 가장 어울릴 수도.
안중근이 된 현빈의 연기는 절대 과장되지 않았다. 감정이든, 표정이든, 배우들과 합과 액션까지도. 무엇보다 현빈의 이번 연기에 몰입하게 되는 것은, 그가 직접 보는 이들의 감정을 억지로 터트리게 하지 않기 때문. 끌어올릴 만큼 끌어올리고, 관객 스스로 안중근의 감정에 동화되게 한다. '아, 어쩌면 나도'라는 상상과 함께.
안중근 역을 완벽히 소화한 현빈. 연기에 대한 평가는 호(好)다. 현빈이어서 좋았다. 혼을 쏙 빼는, 혼을 불태운 현빈의 열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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