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걸', '슈퍼맨'의 그늘서 피어오른 강한 생명력의 야생화

영림(칼럼니스트) 기자
2025.12.29 08:00

2026년 6월 개봉....삐딱하고 반항적인 슈퍼히어로가 온다

2026년 6월 개봉 예정인 영화 '슈퍼걸'은 슈퍼맨과 대비되는 냉소적인 슈퍼히어로 캐릭터를 다룬다. 슈퍼맨이 고향 행성의 멸망을 직접 경험하지 못해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반면, 슈퍼걸은 생존자로서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INTJ 또는 ISTP 성향을 보인다. 두 캐릭터의 상반된 성격은 트라우마와 현실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며, 슈퍼걸은 인류의 한계를 보는 반면 슈퍼맨은 가능성을 보는 대조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수년 전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시청자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든 명장면이 있다. 주인공 우영우(박은빈)가 대학 시절부터 곁을 묵묵히 지켜주며 도움을 준 최수연(하윤경)에게 “넌 봄날의 햇살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편견으로 똘똘 뭉친 세상에서 우영우를 비춰준 최수연의 다정함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설명할 말은 없다.

‘슈퍼히어로’ 세계에도 자타공인 봄날의 햇살이 있다. 구김살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맑은 존재, 바로 슈퍼맨이다. 파란 수트를 입고 하늘에서 내려와 시민들을 구하며 안심시키는 그의 미소를 보고 있으면, 건강한 자아와 이타심으로 단단히 사회화된 ENFJ의 결정체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괜히 슈퍼맨이 DC 코믹스 내에서 ‘보이스카우트’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사진='슈퍼걸' 티지 예고편 영상 캡처

하지만 최근 예고편이 공개된 ‘슈퍼걸’의 카라 조-엘은 전혀 다른 톤으로 등장한다. 마치 사춘기를 정통으로 관통한 듯 만면에 냉소가 가득하다. 그녀는 높은 하늘에 홀로 서서 “슈퍼맨은 모두에게서 선함을 보지만, 난 진실을 봐”라고 말한다. 슈퍼맨이 ‘봄날의 햇살’이라면, 자신은 그늘에서 태어난 존재임을 선언하는 듯한 대사다.

이쯤에서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똑같이 고향 행성이 파괴됐고, 가족을 잃은 슬픔의 무게도 같다. 그런데 왜 한쪽은 낙천주의의 상징으로, 다른 한쪽은 걸어 다니는 냉소주의자로 자랐을까. 이 괴리의 원인에 ‘기억’이라는 변수가 있다.

슈퍼맨의 낙천성은 ‘망각’, 정확히는 고향 행성 멸망을 직접 겪지 못한 경험의 부재에서 온다. 그는 갓난아기 때 지구로 보내졌고, 켄트 부부의 따뜻한 보살핌 아래 자랐다. 그에게 크립톤의 멸망은 뒤늦게 배운 비극이다. 슬픈 일이지만 삶 전체를 규정하는 현재진행형 상처가 아니다.

사진='슈퍼걸' 티저 예꼬편 영상 캡처 

반면 슈퍼걸 카라 조-엘은 14년 동안 크립톤의 문명을 누리고, 그곳의 공기를 마시며 친구들과 미래를 약속하던 소녀였다. 무엇보다 그는 참사의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본 생존자다. 즉 슈퍼걸은 참사 피해자이며 유가족인 동시에 생존자다. 그런 인물에게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는 정서를 기대하기란 애초에 무리다.

바로 여기서, 두 사람의 MBTI가 갈라진다. 슈퍼맨이 타인의 선의와 가능성을 전제하는 사회화된 ENFJ라면, 슈퍼걸은 ‘선의’보다 ‘현실’을 먼저 의심하는 쪽이다. 슈퍼걸은 철저한 INTJ 혹은 ISTP의 결로 움직인다.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기보다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T), 군중 속에서 안정을 얻기보다 혼자일 때 더 명확해지며(I), 명분보다 당장 눈앞의 사실과 구조에 집착한다(T).

그리고 이 분석은 우울한 상상력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음 수를 계산하고, 손익을 따지고, 가장 효율적인 생존 경로를 택한다는 점에서 J(INTJ) 혹은 P(ISTP)로 갈리는 것이다.

슈퍼걸의 냉소는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다. 오히려 다시는 소중한 것을 잃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은 생존자의 방어기제다. “난 진실을 봐”라는 문장은, 세상에 대한 허무주의 선언이 아니라 ‘나는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자기 보호의 언어에 가깝다.

사진='슈퍼걸' 티저 예고편 영상 캡처

그래서 예고편 속 슈퍼걸은 영웅으로서의 품위나 시민들의 평판 따위엔 눈길도 주지 않는다. 헝클어진 머리에 선글라스를 끼고 맥주잔을 들이키며, 자신을 건드리는 인간들에게 서슴없이 주먹을 날린다. 윌 스미스가 연기했던 ‘핸콕’의 순화된 여자 버전으로 보면 이해가 쉽다. 다만 그 유쾌함이 걷힌 자리에는 더 생존자다운 날것의 계산이 남는다.

슈퍼걸이 말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이 언제든 크립톤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 그리고 인간의 선의 뒤에 숨은 나약함과 이기심에 대한 응시다. 슈퍼맨이 인류의 가능성을 본다면, 슈퍼걸은 반대로 인류의 한계를 본다. 그래서 슈퍼걸에게 히어로 놀이는 또 다른 사치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박수도, 상징도 아니다. 하루를 살아남고, 눈앞의 위협을 제거하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목표다.

이런 슈퍼걸의 복잡성은 전작 '크루엘라'에서 메가폰을 잡았던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을 통해 더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는 전작에서부터 우리가 모두 아는 악녀의 내면을 집요하게 탐구하며, 캐릭터의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예고편을 통해 잠깐 엿본 감독의 렌즈 속에서 슈퍼걸은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인류를 관망하는 아이콘이 아니다. 오히려 지독한 트라우마를 통과 중인 개인이다. 어쩌면 우리는 ‘슈퍼걸’이라는 이름의 히어로 무비를 보면서, ‘PTSD에 준하는 트라우마’를 어떻게 견디고 건너는지에 대한 영화적 기록을 돈 주고 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슈퍼맨' 티저예고편 영상 캡처

그럼에도 슈퍼맨의 ‘바른 생활 일기’만 기다릴 순 없다. 가끔은 나처럼 욕도 하고, 세상의 부조리에 함께 침을 뱉어준 영웅도 필요한 법이다. 슈퍼맨이 우리의 ‘꿈’이라면, 슈퍼걸은 우리의 ‘현실’이자 ‘흉터’다. 그리고 우리는 완벽한 봄날의 햇살보다, 훨씬 더 뜨겁고 선명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생존자의 목소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슈퍼걸'은 2026년 6월 전세계 극장가를 찾는다.

영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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