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가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인생에는 명확한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살아간 사람들의 궤적을 바라보며 그 전철을 밟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이 겪은 나쁜 길을 요리조리 피해 가기도 한다. 반대로 먼저 삶을 개척한 이들은 후대를 위해 자신이 걸어온 방향으로 이끌어 주거나, 안 좋은 길은 가지 말라고 조언을 건넨다. 서로를 향한 참 좋은 의도이자 방법이지만, 필연적으로 갈등이 피어오르는 아이러니한 지점이기도 하다.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의 주인공 김국희(염혜란)의 상황이 그렇다. 완벽주의 공무원이자 억척스러운 싱글맘으로 치열하게 살아왔다. 딸 해리(아린)에게는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메시지를 주는 반면교사지만, 부하직원 김연경(최성은)에게는 '모든 것을 닮고 싶은' 롤모델이다. 이 엇갈린 시선은 결국 "사는 것에는 정답이 없다"는 명제를 다시금 증명한다.
‘매드 댄스 오피스’는 24시간을 빈틈없이 통제하며 살아오던 구청 과장 국희가 승진 누락과 딸과 갈등이라는 인생 최대의 균열을 맞이하면서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다. 어쩌면 조금 망해버린 것 같은 국희의 좌절 앞에 '플라멩코'라는 낯선 세계가 펼쳐진다. 뻣뻣한 몸만큼이나 꼿꼿하고 경직됐던 국희의 일상이지만 어느덧 플라멩코의 정열적인 리듬이 그의 심장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진 않는다. 무조건 뼈를 깎으며 열심히 살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충 적당히 살라는 얄팍한 위로를 건네지도 않는다. 어차피 정답이 없는 것이니 그저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무심하게 등을 밀어줄 따름이다. 물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다.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에 굳이 옳다 그르다 잔소리할 필요가 없다’는 쿨한 태도가 묘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세대 갈등을 영리하게 비켜간다. 올드스쿨과 젠지 사이에서 중립적인 자세로 양쪽을 저울질한다. 영화가 꼬집는 건 개인의 성향과 올바른 성정이다. 극 중 비굴하고 약삭빠른 처세술로 살아가는 구청 동료 태식(박호산)을 보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결국 ‘꼰대’와 ‘구악’이란, 단순하게 나이와 세대 차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신파를 배제한 것도 고무적이다. 치열하게 살아온 싱글맘, 엄마의 헌신을 몰라주는 딸, 스트레스 가득한 공무원 사회 등 버튼만 누른다면 언제든 눈물을 짜낼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영화는 감정의 과잉없이 담백하고 경쾌한 스텝을 밟는다. 단편 ‘무서워서 크게 부르는 노래’로 제3회 전주국제영화제 대상을 거머쥐었던 조현진 감독은, 첫 장편 데뷔작인 이번 영화에서도 군더더기 없는 연출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물론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플라멩코가 일종의 만능 열쇠처럼 쓰이니, '기승전 플라멩코' 식의 전개가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플라멩코라는 댄스 장르가 다소 낯선 구석이 있기에, 일반 관객이 오롯이 몰입하기엔 장벽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제작비가 보다 넉넉했더라면 영화 속 댄스 시퀀스들이 훨씬 화려하고 다채롭게 연출됐을 것이라는 미련을 남긴다.
염혜란이라는 배우는 ‘매드 댄스 오피스’의 간판이다. 마음대로 살더라도 열심히 사는 건 나쁘지 않다는 걸 국희의 삶으로, 그리고 자신의 배우 인생으로 증명한다. 작은 조연부터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넷플릭스 ‘더 글로리’와 ‘폭싹 속았수다’, 그리고 영화 ‘어쩔 수가 없다’로 전 세계에 얼굴을 알렸다. 플라멩코는 자유를 품고 있지만, 그 본질은 발바닥이 찢어지도록 스텝을 밟는 정열에 있을 터, 염혜란이 태워왔던 뜨거운 연기 혼은 첫 원톱 주연작 ‘매드 댄스 오피스’로 보상받는다.
최성은의 연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신과 꼭 맞는 옷을 입었다. 김연경은 현실에 존재할까 의심스러운 고대 환상종 같은 부하직원이다. 철야를 밥 먹듯이 하는 것도 모자라, 퇴근 후에는 자발적으로 상사를 따라 댄스 학원까지 함께한다. 최성은은 이 헌신적이고 맑은 캐릭터를 특유의 싱그러운 에너지로 표현하며 작품에 생기를 더한다.
오늘 하루도 정답만을 강요하는 이 사회에 지친 사람이라면, ‘매드 댄스 오피스’의 플라멩코리듬에 몸을 맡겨 보길 바란다. 굳이 스텝이 완벽할 필요도 없다. 박자가 조금 틀리면 어떠한가. 지금 내 심장이 뛰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일이다.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는 오는 4일 개봉한다. 106분. 전체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