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개봉한 피터 위어 감독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단순한 학원물이 아니었다. 입시와 권위주의 교육 속에서 성장한 세대에게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실을 즐겨라)’의 가르침은 삶의 태도를 바꾸는 전향적인 사건이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국내 첫 라이선스 연극으로 공연 중이다. 37년이 지난 지금 이 연극은 단순히 명작 영화의 향수가 아니라, 우리 교육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은 한국 교육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교사의 권위가 무너진 시대, 한때 올바른 삶으로 이끄는 교육을 뜻했던 ‘참교육’은 불의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큰 폭력으로 대응하는 복수의 언어로 전략해 버렸다. 지식의 전달이나 진학을 지도하는 교육의 기본적인 역할마저 상당 부분을 학원이나 과외 교사에게 넘어간 현실에서 올바른 삶의 길을 질문하는 키팅 선생님의 가르침은 이제는 판타지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식 습득이나 진학을 넘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키팅 선생님 같은 교사가 더 절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연극은 영화의 작가 톰 슐먼이 2016년 직접 무대용으로 각색한 희곡을 바탕으로 한다. 조광화가 한국 공연의 각색과 연출을 맡아 국내 최초의 라이선스 프로덕션으로 선보였다. 작품은 웰튼 아카데미 학생들이 학교의 네 가지 교훈인 “전통, 명예, 규율, 일류”를 암송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학생들은 각 교훈의 정의를 암송하며 학교가 정해놓은 가치와 질서를 한 치의 의심도 가지지 않는다. 획일적인 구호를 복창하는 얼굴에는 신념과 자부심이 어려 있지만, 빈틈없이 통제된 교육 속에서도 억누를 수 없는 젊음의 생기와 자유를 향한 욕망이 불쑥불쑥 새어 나온다.
키팅 선생님이 등장하면서 학생들 안에 잠재되어 있던 젊은 에너지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학생들에게 정답을 주입하지 않는다. 권위 있는 문학교수의 서문을 찢게 하고, 책상 위에 올라 세상을 다른 높이에서 바라보게 하며, 교정을 저마다의 보폭으로 걸어보라고 한다. 두꺼운 교과서의 페이지를 찢고 교탁 위에 올라서는 행동은 사소해 보이지만, 기존 교육의 가치와 권위에 직접 도전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에는 익숙한 질서에서 한 걸음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용기가 필요하다. 키팅은 거창한 선언이나 추상적인 가르침 대신, 학생들이 작은 실천을 통해 그 용기와 도전을 직접 경험하게 한다. 다른 학생들과 무리 지어 걸으면서도 자신만의 보폭을 유지하게 하는 수업 역시 집단의 익명성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속도와 리듬을 찾도록 하기 위한 교육이다. 그의 수업은 모두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세상이 정해놓은 시각과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유하며 자신만의 관점과 삶의 방식을 찾아가라는 것이다.
키팅 선생님은 시를 통해 학생들이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힘을 얻기를 바란다. 작품에는 10여 편의 시인들의 시와 학생이 직접 지은 시가 등장한다. 익숙한 언어의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각과 심상을 만들어내는 시는 본질적으로 자유를 지향하는 장르다. 학생들은 시가 은유하는 삶의 질문을 자유롭게 상상하며 자신만의 시를 완성하려고 노력한다. 관객 역시 그들과 함께 시가 건네는 삶의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극 속에서 학생들의 변화는 거창한 영웅적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녹스는 사랑 앞에서 한 걸음 내디딜 용기를 얻고, 토드는 두려움을 넘어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며, 닐은 연극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이 모두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닐의 아버지는 무대에 오른 닐의 열망을 인정하지 않고 그를 다시 자신의 계획 안에 가두려 한다. 아버지에게 맞설 힘도, 그렇다고 연극의 꿈을 포기할 수도 없었던 닐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작품은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일이 얼마나 도전적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한 사람의 가능성을 억압하는 가정과 교육의 폭력이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냉정하게 제시한다.
전통과 규율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놀란 교장은 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키팅에게 전가하고, 키팅이 만들어낸 균열을 봉합하여 학교의 질서를 원상태로 되돌리려 한다. 찰리는 강요된 진술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하고 퇴학을 받아들이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미래가 걸린 상황에서 강압적인 제안에 끝내 서명하고 만다. 학교는 그들이 교육 방식을 지키기 위해 학생들에게 잔인한 결정을 강요한다. 키팅은 학교를 떠나지만, 그의 가르침을 기억하는 학생들은 떠나는 그를 향해 책상 위로 올라서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친다. 키팅은 학교를 떠났지만 그의 가르침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연극은 영화의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새로운 관점이나 과감한 재해석을 덧붙이기보다는 원작의 장면과 메시지를 충실하게 무대 위에 옮기는 데 집중한다. 따라서 영화를 기억하는 관객은 익숙한 대사와 장면에서 반가운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오 캡틴, 마이 캡틴” 장면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진한 감동을 선사하며, 진정한 가르침이 학생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교육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경쟁의 방식은 달라지고 교육 제도는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사유하고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는 교육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진정한 스승이 절실하고 올바른 가르침에 목마른 시대이기에, “카르페 디엠”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한 울림을 남긴다.
키팅 선생님 역에는 차인표, 연정훈, 오만석이 캐스팅되었다. 차인표와 연정훈은 이번 작품으로 처음 연극 무대에 도전한다. 웰튼 아카데미 학생 역에는 찬희, 문성현, 임지섭, 강준규 등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익숙한 배우들이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