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 도심 곳곳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준공을 앞둔 초고층 빌딩부터 이제 막 땅을 다지기 시작한 현장까지 분주한 모습이 이어졌다.
공사장들의 불은 밤 늦은 시간에도 꺼지지 않았다. 교통체증이 심해 그나마 교통량이 적은 밤에 원자재들의 운반이 주로 이뤄지기 때문이란 게 현지에 진출한 한국 건설업체 직원들의 설명이다.
◇한국 건설기업들 시장공략 가속화
2억5000만명(2014년 기준)으로 세계 4위 인구규모와 매년 경제성장률 5%대를 유지하는 인도네시아는 어렵지만 절대 놓칠 수 없는 시장으로 꼽힌다.
해외건설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한국 건설기업들의 인도네시아 수주 누적액은 146억달러(약 16조5400억원)로 세계 13위이자 아시아 6위다. 올 9월말 현재 34개 한국업체가 진출, 78건(2000만달러 이상 기준)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4년 기준 인도네시아 건설시장은 2670억달러로 아시아에선 중국(1조7800억달러) 일본(7420억달러) 인도(4270억달러)에 이어 4위를 차지한다.
개발도상국인 인도네시아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 비해 사업기회가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조코위 신정부는 연초 △3만5000㎿(메가와트) 규모의 발전소 개발사업 △북부 술레위시주 비뚱과 남부 술레위시주 마까사르항만 등 주요 124개 항만 신설·확장 및 1481개 항만 개·보수 △일반도로 2650㎞와 고속도로 1000㎞ 건설 등의 5개년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총 5519조4000억루피아(약 5200억달러)가 투입되며 재원은 정부 50%, 국영기업 30%, 민간투자 20% 등을 통해 마련키로 했다. 자카르타 공항철도, 발리 신공항 건설, 까리안 다목적댐 사업 등도 주요 프로젝트로 꼽힌다.
이에 맞춰 한국 주요 건설업체들은 올해 시장공략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건설은 지난 6월 2억3000만달러 규모의 인도네시아 국영전력회사(PT PLN)가 발주한 그라티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했다.
같은 시기대림산업은 총 915억원 규모의 까리얀 다목적댐 건설공사를 따냈다. 대림산업은 이달에도 치소칸강에 양수발전소를 짓는 1077억원 규모의 공사를 수주했다. 포스코건설은 찌아위-수카부미 연결 고속도로 공사(9918만달러)를 수주했다.
◇플랜트·토목·건축 시공에서 복합신도시 등 개발사업까지
진출영역도 넓혀가고 있다. 포스코건설과 롯데건설은 최근 인도네시아 건축시장에 처음으로 뛰어들었다. 포스코건설은 지난달 자카르타 남부 시마뚜빵 지역에 호텔, 레지던스, 아파트 등을 짓는 38층 규모의 복합건물 공사에 착공했다.
롯데건설도 지난 8월 오피스 1개동과 42층 높이의 아파트 2개동을 짓는 코타카사블랑카 2단 공사를 따내면서 건축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만 해도 수주액의 75%를 발전소 등 플랜트공사가 차지하고 나머지가 토목과 제조업체 공장공사였다.
사업방식도 단순 시공에서 CM(건설사업관리)용역, 개발사업 등 다변화를 꾀한다. 그룹 차원에서 인도네시아를 해외시장 공략의 거점으로 삼은 롯데는 유통계열사 등이 보유한 부지 약 5만㎡ 등을 활용해 개발사업에 뛰어든다는 전략이다.
이강우 롯데건설 인도네시아 지사장은 “롯데건설은 후발주자지만 주요 계열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도네시아에 진출했다”며 “계열사간 시너지를 내면서 시장공략을 본격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도 최근 개발사업 전담 인력을 파견, 개발사업 진출을 위한 사전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지난달 본사 인력을 파견, 본격 진출을 위한 시장조사에 들어갔다.
특히 지난 2일 인도네시아 미디어그룹 MNC의 자회사 MNC랜드와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 지역에 3500㏊(헥타르) 규모의 복합신도시 건설을 위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건설 세부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LH는 이번 사업을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의 돌파구로 삼을 방침이다.
◇토지수용의 어려움과 관료주의 부정부패…자금조달 한계도
하지만 난관도 만만치 않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국내 주요 건설업체 지사장들은 “막상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은 제한적”이라고 토로한다. 특히 인프라사업의 경우 정부의 재정여력이 부족해 민간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데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엄성용 한국수출입은행 자카르타 사무소장은 "인프라사업의 경우 수요예측이 불확실함에도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급보증을 해주지 않고 있다"며 "루피아화 가치 하락 등 환율변동이 심한 가운데 대규모 자금을 선뜻 지원해줄 외국 금융기관이 없다"고 말했다.
토지수용의 어려움, 만연한 관료주의와 부정부패 등 제도의 불투명성도 사업진출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국내 A건설 인도네시아 지사장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다. 현 정부의 정치적 기반이 약해 정부사업이라고 해도 계획적으로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현지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사업의 경우 공적개발원조기금(ODA) 등 막강한 자본력을 등에 업은 일본과 저가진출전략을 앞세운 중국의 틈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어렵게 수주를 따내도 불투명한 행정처리와 인력운용의 어려움 등으로 수익성 악화에 대한 우려마저 제기된다. 국내 B건설 현지 복합건물공사 현장소장은 “현지 직원들에게 2주마다 급여를 주는 데 급여를 받고는 고향에 내려간다. 그렇지 않으면 급여를 더 많이 주는 사업장으로 미련없이 떠난다”며 “인력의 손바뀜이 계속 일어나 작업의 효율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고 털어놨다.
◇“최소 5년 이상 장기 관점서 투자…민관협동사업 다변화 필요”
장기적으로 꾸준히 인적네트워크 등을 관리하면서 공을 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승훈 해외건설협회 인도네시아 지사장은 “세계 유수 건설업체들도 인도네시아에 직원을 파견해 5년을 들여다본 뒤 사업을 진행한다”며 “한국업체들도 조급하게 뛰어들지 말고 꾸준히 시장에 참여하면서 기회를 엿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지 대형 개발업체 일부에 한국인들이 자리잡은데다 교민사회도 비교적 탄탄해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할 여지도 얼마든지 있다는 설명이다. 쌍용건설이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꾸준히 수주를 해온 것도 IMF 외환위기 시절 국내업체 중 유일하게 철수하지 않고 시장을 지키면서 현지 정부·업체들과 신뢰를 쌓은 영향이 크다는 평가다.
이우철 건설공제조합 동남아사무소장도 "지금은 베트남이 주목받지만 그 다음 시장은 인도네시아로 본다. 적어도 이 시장을 빼놓고 다른 곳을 말할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토지수용, 부정부패, 인허가의 어려움이 있지만 외국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나라의 특성상 장기적으로 개선 가능성이 있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적극적인 민관협동 방식의 사업다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가령 투자개발형 사업의 입찰단계부터 개발, 건설·운영단계까지 필요한 패키지금융을 제공해야 자금조달이 원활해져 국내 건설업체들의 진출이 원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기구의 개발자금, 원조자금, 공적자금, 민간은행의 자금 등 다양한 금융수단 융합을 위한 시스템 개발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수출입은행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발굴해 국내기업의 참여를 이끌 수 있는 복합금융 지원사업을 적극 모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서 지난해 수출입은행은 포스코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이 주도하는 인도네시아 스망카 수력발전소 건설·운영사업에 715만달러(약 76억원) 규모의 지분투자자로 참여했다.
수출입은행이 지분투자를 한 첫 사례다. 정책금융기관이 지분투자자로 참여하면 안정적인 금융조달이 가능해져서다. 수출입은행은 대출과 보증을 합쳐 이 사업에 총 1억3290만달러(약 14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 금융을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