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인 노원구 공릉동 태릉골프장 부지를 해제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은 '졸속행정'이란 비판이 잇따른다.
그린벨트 환경영향평가 1~2등급 부지를 아파트촌으로 개발하는 것은 그동안 녹지 보존을 지향한 서울시 정책 방향과 어긋나는 데다, 그렇지 않아도 교통난이 심각한 지역인데 추가 교통대책을 고민하지 않고 밀어붙인다는 이유에서다.
환경시민단체와 주민들은 태릉골프장 택지개발에 반대하면서 군골프장이 아닌 '도시공원'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일부 주민들은 태릉골프장 인근에 비슷한 규모의 대체 부지가 있다는 점도 거론하며 정부의 정책 수정을 촉구한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태릉골프장 부지 주택개발 검토를 지시한 20일 이후 노원구청 홈페이지에 지역 주민들의 항의 민원이 급증했다. 대부분 무분별한 환경 파괴와 교통대책 없는 대규모 주택공급에 반대하는 내용이다.
일부 주민들은 대체 부지로 인근에 대규모 주택공급이 가능한 '한국전력공사 인재개발원' 부지를 거론한다.
노원구청에 따르면 한전 인재개발원 부지(노원구 공릉동 170-2 일대) 면적은 약 68만㎡에 달한다.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 중인 태릉골프장 부지(부대시설 포함 약 83만㎡)의 약 82% 수준이다. 업계에선 주택 7000~8000가구를 조성할 수 있는 규모로 본다.
한전은 해당 부지를 매입해서 1986년 9월부터 인재개발원으로 활용 중이다. 현재 연면적 3만6896㎡ 규모로 교육시설과 생활실, 주차장, 풋살장 등 체육시설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한전 본사가 2014년 말 전남 나주로 이전했고, 최근 온라인 강좌 위주로 교육과정이 개편돼 예전보다 활용도가 떨어진 상태다. 특히 올해 초 코로나19(COVID-19) 사태가 확산된 이후로 현장 집합교육을 온라인으로 대체하고 있다. 상주인력은 100여 명이다.
과거 한전 내부에서도 인재개발원 이전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이정희 전 한전 상임감사는 지난해 11월 "서울에 있던 한전 본사가 나주혁신도시로 이전한 만큼 인재개발원도 광주, 전남으로 이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공기업인 한전이 보유한 부지여서 정부 의지에 따라 신속한 보상과 수용을 통해 택지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녹지 보존 측면에서도 보다 합리적이다. 환경부 국토환경성평가지도에 따르면 한전 인재개발원 부지 중 절반 이상이 그린벨트 환경영향평가 5등급 이하로 분류된다. 건물이 들어선 곳은 80% 이상이 환경영향평가 5등급지다. 부지 대부분이 환경평가 1~2등급인 태릉골프장보다 훼손도가 높다는 의미다.
정부는 전일 대정부질문에서 정세균 국무총리가 밝힌 대로 태릉골프장 부지를 택지로 개발해서 청년과 신혼부부 위주로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일각에서 제기한 인접한 육군사관학교 이전을 통한 통합개발은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한전 인재개발원 부지는 택지개발을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해당 부지는 물론 문 대통령이 언급한 태릉골프장 부지도 아직은 구체적인 공공택지 개발을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부와 태릉골프장 개발 협의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 무조건 찬성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며 "검토 과정에서 환경 보존가치도 충분히 살펴볼 계획"이라고 했다.
태릉골프장 개발은 강남북 지역 차별이란 문제도 제기된다. 공릉동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용산미군기지는 태릉골프장보다 훨씬 넓은데 모두 공원으로 조성하고, 강남권에 비닐하우스로 방치된 곳도 그린벨트라고 보존하면서 왜 이곳을 손대냐"며 "전형적인 지역차별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태릉골프장 개발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게시물은 현재 약 1만명이 동의한 상태다. 청원인은 "육사나 태릉골프장을 이전해도 이곳은 '녹지공간'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시민단체와 연대한 경실련과 참여연대도 같은 입장이다. 이번 기회에 군골프장이 아닌 도시공원 조성 논의를 본격화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