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지인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8년을 살던 전셋집에서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출산 후 직장과 가까운 곳에서 어렵게 자리잡은 집이었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새 전셋집을 구하려고 보니 물건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매물은 몇 달 사이 가격이 훌쩍 뛰어 있었다.
매매로 눈을 돌려봤지만 상황은 더 답답했다. 전세대출은 나오는데 집을 사려니 대출이 막힌다. 그렇다고 전세를 유지하려 해도 보증 한도에 걸린다. 결국 외곽으로 나가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했다. 직주근접이 무너지면 일과 육아 모두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걱정이 이어졌다.
정부의 방향은 분명하다. 다주택자를 압박해 매물을 시장에 내놓고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강남권은 직전 거래가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급매물도 쏟아졌다. 집값 상승세도 한풀 꺾였다.
하지만 시장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대출 규제가 더해지면서 매수 수요는 특정 가격대에 몰리고 있다. 15억원 이하, 10억원 이하 주택으로 수요가 집중되며 서울 외곽과 중저가 지역의 가격은 오히려 더 빠르게 오르고 있다. 최근 서울 아파트값이 63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강서, 관악, 노원 등 외곽 지역의 상승률이 0.2~0.3%대로 더 높게 나타나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서울 안에서의 '키맞추기' 현상이 인접 경기 지역으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시장의 체감 온도는 더 크게 엇갈린다. 강남권 일부가 주춤했다는 신호는 나오지만 정작 실수요자가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의 주택은 더 비싸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출 규제로 상위 시장으로 이동이 막히자 중저가 구간에 수요가 머물고, 그 수요가 다시 가격을 밀어 올리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임대 시장의 변화는 더 직접적이다. 전세 매물은 빠르게 줄고 있다. 실제로 서울 전세 매물은 두 달 사이 24% 넘게 감소했다. 공급이 줄어든 자리를 월세가 빠르게 채우고 있다. 전세를 찾던 수요는 선택지를 잃고 월세로 밀려나고 그 결과 월세는 다시 오르는 구조다. 결국 주거비 부담은 더 빠르게 커지고 있다.
특히 직주근접이 중요한 맞벌이 가구나 육아 가구일수록 선택지는 더 좁아진다. 주거 비용이 올라가더라도 기존 생활권을 유지할지, 비용을 낮추기 위해 외곽으로 밀려날지를 두고 고민해야 한다.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라 삶의 구조를 흔드는 문제로 이어진다.
결국 규제의 충격은 의도와 다른 곳에서 나타난다. 다주택자를 겨냥한 정책이 시장을 흔들면서 실수요자의 선택지는 오히려 줄어든다. 집을 사기도 어렵고 전세를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 남는 것은 더 비싼 월세뿐이다.
부동산 시장은 얽히고설킨 구조다. 하나를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 오르는 '풍선 효과'가 반복된다. 가격을 누르는 데 집중한 정책은 주거의 안정이라는 본질을 놓치기 쉽다. 문제는 집값이 아니라 '살 수 있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