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놓은 '1·29 공급대책'의 핵심은 도심 공급이었다. 노후 청사와 유휴 공공부지, 국공유지를 활용해 실수요자가 원하는 지역에 빠르게 주택을 공급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발표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는 눈에 띄지 않는다. 시장에서는 공급 정책을 총괄해야 할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의 존재감이 사라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토부는 출범 직후 주택 공급 기능을 일원화하겠다며 지난 1월 '주택공급추진본부'를 출범시켰다. 신도시 등 택지 개발부터 도심 정비사업, 민간 재개발·재건축 정책까지 통합 관리하겠다는 취지였다. 대규모 택지와 도심 공급 정책은 공급추진본부가 맡고 비(非)아파트와 임대시장 관련 정책은 주택토지실이 담당하는 구조다. 조직 개편의 가시적 성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주택공급추진본부와 기존 주택토지실 간 역할 구분도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임대정책 콘트롤타워인 주택토지실장 공백까지 겹치며 정책 조정 기능이 약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주요 부동산 정책 메시지가 대통령실과 경제 라인을 중심으로 먼저 공개되고 국토부가 이를 뒤따르는 모습도 이런 분위기를 키우고 있다. 대통령이 이미 SNS를 통해 부동산 관련 메시지를 내놓은 상황에서 주무 부처인 국토부 공무원들이 해당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수시로 목격된다. 급변하는 시장 분위기에 대응하는 정책 반응 속도는 빨라졌을지 몰라도 보다 긴 호흡의 추진력이 요구되는 대규모 주택 공급정책은 오히려 힘이 빠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전 조율 없이 공급 계획이 발표됐다는 인식이 남아 있는 데다 국토부 내부에서도 공급·임대·재개발 정책 기능이 분산돼 움직이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호언과는 달리 현실의 숫자는 공급 공백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과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공동주택 입주 예정 물량은 2만7158가구로 전년(3만7103가구) 대비 26.9% 감소한다. 내년에는 1만7197가구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주택 공급의 선행지표인 인허가 실적도 급감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주택 인허가 물량은 5632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 62.4% 감소했다. 수도권 전체 인허가 물량 역시 2만7271가구로 26.3% 줄었다. 착공 공백 속에 공급 부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현재 방식만으로는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어렵다고 본다. 대부분 사업이 실제 입주까지 5~7년 이상 걸리는 만큼 빈집 활용과 비아파트 정비 같은 단기 공급책도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부 역시 상가주택 리모델링이나 비아파트 정비사업 등을 통해 빠른 공급을 추진 중이다.
한 주택건설업계 관계자는 "현재 정부 정책은 공급 확대보다 다주택자 규제를 통한 수요 관리에 무게가 실려 있는 모습"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시장 심리를 누를 수 있지만 장기적인 공급 안정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정권마다 정책 방향이 바뀌는 구조 자체가 시장 피로도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단기 시장 대응 중심 정책만 반복되면서 공급 로드맵에 대한 신뢰가 약해졌다"며 "이제는 10~20년 단위 장기 계획을 기반으로 일관된 공급 정책을 추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