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동안 한 집에서 자녀를 낳고 키우며 살아온 무주택자 C씨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직접 들어와 살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주변 전셋집을 급하게 알아봤지만 매물은 부족했고 전셋값도 크게 올라 있었다. 자녀 양육과 교육 때문에 생활권을 벗어나기도 어려웠다. 결국 C씨는 인근에서 종전보다 전세보증금 4억원에 월세 100만원을 더 부담하는 조건으로 집을 구했고, 늘어난 보증금은 대출로 마련했다.
C씨는 무주택자인 자신에게까지 실거주 중심 정책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늘어난 대출 이자가 걱정인 데다 전월세 불안이 계속된다면 더 늦기 전에 집을 사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도 시작했다. 집주인의 실거주 전환이 세입자의 주거비와 주거 선택까지 흔든 사례다.
정부 주택정책에서 '실거주'의 무게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집을 사려면 들어가 살아야 하고, 자기 집을 두고 다른 집에 전세로 살면 대출이 어려워진다. 직접 거주하지 않으면 세금 부담도 커진다. 문제는 정부가 말하는 실거주가 사실상 '집주인의 실거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집주인이 살지 않는 집에도 이미 임차인이라는 거주자가 있다.
최근 정책에서도 이 같은 기조는 뚜렷하다. 정부는 8·13 대책에서 자기 집을 보유한 채 다른 주택에 전세로 사는 1주택자의 전세대출을 원칙적으로 제한했다. 최근 세제개편안에서는 실거주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를 14억원으로 높이는 반면 자기 집에 살지 않으면 현행 12억원에서 9억원으로 낮추기로 했다. 장기보유 세액공제도 거주 중심으로 재편한다. 같은 한 채를 보유해도 '집주인이 그 집에 사느냐'에 따라 대출과 세 부담이 달라지는 구조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해를 맞추던 장치도 사라진다. 올해 말 종료되는 상생임대주택 특례는 임대료 인상률을 5% 이내로 제한하면 양도세 비과세 등에 필요한 거주요건을 면제한다. 집주인은 임대를 유지하고 세입자는 임대료 부담을 덜며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 선택지가 사라지면 집주인이 직접 들어가 살 유인은 커지고 기존 세입자의 주거 안정은 흔들릴 수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정책을 거슬러 올라가도 방향은 한결같다. 서울 전역 아파트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 주택 취득 후 원칙적으로 2년간 직접 거주하도록 했고, 수도권·규제지역에서 주택구입 목적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전입 의무를 부과했다. 여기에 세제와 전세대출까지 실거주 여부에 따라 차등을 두면서 매입부터 보유·대출까지 '집을 가졌다면 그 집에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강화해왔다.
각각의 정책은 투기와 갭투자를 차단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규제가 누적될수록 생활상의 이유로 자기 집에 살지 않는 1주택자의 비용은 커지고 실거주를 선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만큼 그 집에 이미 살고 있는 임차인은 다시 집을 구해야 한다.
집주인이 자기 집에 살지 않는 이유도 투기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직장이나 자녀 교육, 부부의 근무지 등으로 소유한 집과 실제 생활권이 다른 경우도 있다. 이들을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면 그 집의 세입자는 다시 임대차시장으로 나와야 한다.
집주인이 살던 임차주택이 시장에 나온다고 문제가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지역과 가격, 면적이 달라 서로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세 공급까지 부족하면 밀려난 세입자는 외곽이나 중저가 주택, 반전세·월세로 이동하면서 또 다른 임차인과 경쟁하는 연쇄 이동으로 이어진다.
결국 문제는 '누구의 실거주인가'다. 소유자의 실거주를 우선할수록 그 집에서 이미 살고 있는 임차인의 주거 안정은 뒤로 밀릴 수 있다. 집주인이 살지 않는다고 '비거주'가 아니다. 그 집에는 이미 임차인이 살고 있다는 점까지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