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Paradigm)’이란 단어가 있다. 사전적 정의로는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를 가리킨다. 이런 개념 때문인지 사람들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면 ‘틀렸다’고 치부한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자. 최근 상황을 보면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이 모든 것들이 과연 틀린 것일까. 기존의 가치를 그대로 답습하고 만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은 생성될 수 있을까. 요즘 우리나라가 처한 문제를 보면 인식의 차이가 왜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대 후반으로 전망되고 있다. 선진국들이 이미 겪었던 저성장, 저고용의 뉴노말(New Normal)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현재의 패러다임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는 ‘틀린’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선을 돌려보자. 곳곳에서 기존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렇다고 이것을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 산업의 변화상을 살펴보자. 이전까지는 자동차, 전자부품 등 소위 잘 나가는 산업이 수출과 경제를 이끌어 왔다. 이들 산업의 고용유발계수는 각각 6.6명, 6.4명이나 된다. 10억원의 재화를 생산할 때 각각 6.6명과 6.4명을 고용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제 주력산업이 반도체, 석유제품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산업의 고용유발계수는 각각 3명, 2.7명에 불과하다.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자본집약적 산업으로 패러다임이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도 패러다임 변화의 주된 요인이다. 인공지능과 인터넷 연결기기를 통한 자동화는 과거 산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 기업들도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인력 확보보다는 자동화, 생산성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AI(인공지능) 주식 트레이더, 무인계산대 등이 단적인 사례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다름’ 속에서 우리 경제의 저성장·저고용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다. 과연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상황은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기존 주력산업인 자동차, 전자부품 등은 자본 투자와 자동화가 이뤄지면 생산성이 향상된다. 당장 인력은 줄겠지만 새로운 수요가 생기면서 더 많은 생산이 필요해진다. 즉 추가적인 노동 수요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반세기 동안 생산 및 고용의 추이를 보면 생산성 증가율이 높을 때 취업자 수 증가율도 함께 상승했다. 낮은 ‘고용률’이라는 숫자보다 장기적인 ‘시선’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처럼 한국경제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가 가져온 과도기적 현상이라 보는 것이 정확하다.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시행하는 구조조정처럼 어려움을 극복하면 새로운 성장 기회가 다가온다.
이제 모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동일한 출발선에 서 있다. 기존 패러다임의 사고방식에 갇혀 ‘맞다’, ‘틀리다’로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앞서기 위해서는 ‘달라져야’ 하고 ‘달라졌음’을 인식해야 한다. 글로벌 위기의 순간 패러다임의 변화를 포착해 아이폰을 탄생시킨 애플처럼, 리스크 관리로 세계 1위 은행으로 도약한 JP모건처럼 어려움 속에서 기회가 다가온다. ‘달라진’ 세상에서는 먼저 적응해야 승리한다. ‘위기는 기회를 더 많이 보는 것’이라는 격언이 생각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