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의 '실적 부풀리기'를 막겠다며 신규담보 손해율 가정을 예외 없이 90% 이상 적용키로 한 금융당국이 돌연 일부 상품에 대해 도입시기를 6개월 연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23년 IFRS17(새 국제회계기준) 도입 후 금융당국은 실손보험, 무·저해지보험에 이어 올해 손해율과 사업비 가정 가이드라인을 적용, '뻥튀기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예정이었다. 당국의 예외를 인정받은 간편심사(SI·신설 고지유형) 유형은 유병자보험으로 불리며 2020년 이후 판매실적이 급증한 보험이다.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올 6월말 결산실적부터 반영해야 하는 손해율 가정 실무표준을 최근 보험사에 전달하면서 간편심사 유형은 도입시기를 12월 말로 연기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손해율이란 받은 위험보험료 대비 지급보험금 수준을 뜻하는데 손해율 가정을 낮게 잡으면 미래이익(CSM·보험계약서비스마진)이 증가하고 당해 순익이 늘어난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 1월 보험계리 선진화 방안에 따라 '경험통계가 부족한 최근 5년 이내 신규담보 손해율은 최소 90%를 적용'토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5년 이내에 출시돼 경험통계가 없는 신규담보는 보험사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손해율 가정치를 낮게는 60%를 적용했고 업계 평균은 80%로 낮춰잡았다. 금감원은 올 2분기부터 예외 없이 모두 '90% 이상' 적용토록 했다.
금감원은 그러나 최근 실무표준에서 간편심사엔 예외를 허용키로 했다. 간편심사는 주로 유병자를 대상으로 한 보험으로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을 앓거나 과거 진료기록이 있는 사람도 간단한 심사만 거치면 가입할 수 있다. 보험사들은 2020년 이후 유병자보험을 경쟁적으로 판매했다. 손해보험사 기준 신계약의 30% 이상이 간편보험으로 팔렸다. 업계 관계자는 "간편심사는 유형별로 종류가 많아 6월 말까지 일괄적으로 90%를 적용하는데 물리적 어려움이 있다"며 "간편고지 유형에 손해율 90%를 적용하는 게 과도하다는 의견이 당국에 전달됐다"고 말했다.
2020년 이후 간편보험을 공격적으로 판매한 일부 대형사들이 손해율 가정 도입연기를 강하게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6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과 보험 CEO(최고경영자) 간담회에서도 이같은 건의가 제기됐다. 지난해말 기준 장기보험 손해율이 급등한 가운데 신규담보 손해율 가정까지 예외 없이 6월 말부터 90%로 상향하면 CSM이 줄고 실적에 악영향을 준다.
중소형 보험사도 신규담보 90% 일괄적용을 유예하거나 2분기 이후 출시된 신규담보에만 적용하는 방안을 당국에 건의했다. 한 보험사 고위관계자는 "90%를 무조건 적용하면 올해 사업계획을 완전히 다시 짜야 한다"며 "배타적사용권(독점판매권)을 받은 좋은 상품들도 처음부터 손해율 90%로 잡으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유인이 없어진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의 입장선회로 업계의 혼선이 가중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감원은 올해부터 계리감리 전담팀까지 두고 보험회계의 객관성·투명성을 철저히 검증한다는 입장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손해율 가정을 낙관적으로 하지 않은 보험사는 당초 당국의 예고대로 6월말 결산부터 90%를 일괄적용할 예정"이라며 "금융당국이 불분명한 가이드를 주거나 예외를 허용하는 등 오락가락하면 시장에 혼선만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간편보험에 대한 업계의 건의가 있어 일부 반영해 수용했는데 앞으로 세칙개정 등을 통해 명확하게 규범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