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니까 더 많은 걸 희생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는 이제 못해요. 워라벨을 중시하는 MZ 세대에게 무턱대고 사명감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한 중앙부처 공무원)
공직자 재취업 심사가 갈수록 깐깐해 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에 있는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논의까지 본격화 하면서 젊은 공직자들의 민간 기업으로의 이직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이재명 정부 들어서는 산하 유관기관 기관장이나 민간 협회 자리에 관료들의 진출이 원천봉쇄돼 인사 적체가 심화하고 있다.
7일 정부 부처 등에 따르면 6·3 지방선거가 마무리 됨에 따라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논의가 본격화 할 전망이다. 서울에 남아 있는 중앙행정기관인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법무부와 금융위원회의 지방 이전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정부 조직 개편 과정에서 '해체' 위기까지 갔던 금융위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세종 이전 가능성이 점쳐진다. 1급 이상의 고위공직자의 산하기관장 재취업 기회가 확 줄고 공직자 취업심사까지 강화되면서 인사 적체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 이전까지 겹치면서 고위 공무원 뿐 아니라 과장급 이하의 젊은 공직자들도 동요하고 있다.
과거에는 고위 공직자들의 민간 이직이 이슈였다면 최근에는 실무 핵심 인력인 과장급 공무원의 이탈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 실제 금융위 서민금융 담당 과장과 자산운용 과장이 각각 올해 초에 삼성증권과 메리츠증권으로 이직해 금융위 내부가 한동안 술렁였다. 변호사 특채 출신의 자본시장조사 담당 과장은 비슷한 시기에 대형 로펌으로 이동했다.
금감원의 동요는 더하다. 지난 4월 금감원 출신 5명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심사에서 전원 탈락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져서다. 금감원 전 부원장의 경우 한국신용정보원 원장으로 사실상 내정됐지만 취업 승인심사에서 탈락하는 이변도 벌어졌다. 지난달에는 5명이 취업심사 요청을 해서 4명은 통과됐지만 대형 로펌으로 이직하려던 은행검사국 출신 3급 팀장이 '보류' 판정을 받았다. 윤리위가 이전 보다 더 높은 심사 기준을 적용한 것이 대규모 탈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금감원은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이 아닌 무자본 특수법인이지만 이례적으로 4급 이상 직원들이 취업심사를 받는 기관이다. 금감원 취직후 5년이 지나면 취업심사 대상자가 되기 때문에 사실상 전직원의 자유로운 재취업이 막혔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임금피크제로 인해 올해 기준 1970년생까지는 부서장 보직을 내려 놔야 했다. 이런 직원이 많게는전체 2300명 중에서 200명에 달한 적도 있으나 재취업이 어려워 기형적인 인력 구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한 당국 관계자는 "취업심사시 직전 5년 업무 연관성을 피하기 위해 업무 범위가 넓은 특정 부서를 기피하거나 취업 승인 심사를 받는 1급 승진을 꺼리는 직원이 늘고 있다"며 "금융회사와 연봉이 역전돼 젊은 직원들은 기회가 되면 더 높은 수준의 대우를 받는 민간으로 이직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공직자 재취업 심사가 까다로워지면서 공직자들이 '못 간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특히 지방선거가 끝나면서 낙선자들이 '낙하산'으로 주요 자리를 꿰찰 거란 관측도 나온다. 퇴직한 지 3년이 지난 '올드보이' 관료들이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
7일 정부 부처와 금융권 등에 따르면 6·3 지방선거가 마무리되면서 선거에서 낙선한 인사들이 공직자를 대신해 금융 협회 등 자리를 차지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윤리위)가 취업심사 문턱을 높인 것과 더불어 이미 이번 정부가 출범한 후 관료 출신들은 공직에서 퇴직한 후 갈 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금융 유관기관의 경우 관료 출신의 기관장이 내정됐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돌연 선임 절차가 뒤로 밀리면서 현 기관장이 6개월 가까이 임기가 자동 연장되고 있다.
최근 선출된 여신금융협회장의 경우 당초 금융당국 출신 인사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됐으나, 최종 후보군에는 빠졌다. 이 과정에서 관료 출신 인사를 배제하려는 '윗선'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연말에 임기가 만료되는 은행연합회와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등 주요 협회장 자리에도 관료 출신이 지원조차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벌써부터 정치인 출신 협회장이 될 경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직 협회장은 아니지만 직전 생명보험협회에서 3선 국회의원 출신 인사가 회장을 맡은 적이 있다.
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관료들은 속한 기관과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업무를 해 올라간 사람들이라면, 정치인은 모든 활동이 개인의 영달과 연관돼 회사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정치인이 와서 이력이 없는 '내 사람'을 자리에 앉히는 순간부터 내부로부터 비판과 동시에 업무 추진 능력을 상실하는 일도 잦다"고 덧붙였다.
취업심사 기간 3년이 지난 관료들이 다시 자리에 오는 경우를 두고서는 '산업의 역동성'을 따라갈 수 있겠냐는 의견이 나온다. 앞서 2017년 은행연합회장 선출 당시 전 재정경제원 장관 등 70대가 넘는 '올드보이 관료'들이 후보에 이름을 올리면서 금융권의 이목을 끈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은행연합회 이사들은 '제4차 산업혁명'에 적절한 인사가 아니라는 여론 등을 들어 올드보이들을 최종 은행연합회장으로 선출하지 않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교수 출신과 마찬가지로 현장성이 떨어지는 올드보이들이 업무에 곧바로 적응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며 "생성형AI 등 각종 미래산업 키워드가 떠오르는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현직자를 두고 굳이 올드보이를 데리고 오려면 엄청난 거물급이 아닐 경우엔 납득이 어렵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