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려줄 곳 찾아라"…좋은 기업 쟁탈전 은행, 좋아질 기업 발굴전으로

박소연 기자, 김도엽 기자
2026.09.22 07:00

[MT리포트]삼박자 맞은 기업금융 (下)

[편집자주] 기업금융을 둘러싼 정부, 기업, 은행의 이해가 모처럼 같은 방향을 본다. 정부는 부동산에 묶인 돈을 기업으로 돌리려 한다. 기업은 치솟은 채권금리를 피해 은행 문을 두드린다. 은행도 가계대출만으론 더 성장하기 어렵다. 생산적 금융의 삼박자가 맞은 시기, 금리 깎기 경쟁으로 흘려보낼 수는 없다. 기업을 골라내는 심사력과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력을 키워야 한다. 최근 기업금융 시장과 국내 은행들의 변화를 짚어봤다.
"될성부른 기업 먼저 찾아라"…변리사·약사도 뽑는 은행권 심사전쟁
5대 은행 '유망기업 발굴전' 주요 내용/그래픽=김지영

은행권의 기업금융 경쟁이 '좋은 기업을 뺏어오는 싸움'에서 '유망한 기업을 먼저 찾아내는 싸움'으로 옮겨가고 있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초기에 대기업과 초우량기업 위주로 공급되던 자금이 설비투자와 발주를 거쳐 중소·중견 협력사로 확산할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은행들은 바이오·반도체 등 첨단산업 전문가를 심사조직에 직접 배치하고 산업분류와 신용평가모형, 영업점 핵심성과지표(KPI)까지 뜯어고치며 '기업 발굴전'에 대비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은행권 기업대출은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었다. 은행권은 하반기부터 이 자금이 설비투자와 신규 발주를 타고 협력업체로 흘러갈 가능성에 주목한다. 협력업체의 매출과 수주가 늘면 운전자금과 시설자금 수요도 뒤따르기 때문이다.

특히 직접 자금조달이 어려운 중소·중견기업은 은행 대출 의존도가 높은 만큼, 대기업 투자 확대를 계기로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던 기업들이 새로운 여신시장으로 등장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 기업의 미래 성장성을 어떻게 판별하느냐다. 이미 높은 신용등급과 충분한 담보를 갖춘 기업이라면 은행 간 금리 경쟁으로 고객을 확보할 수 있지만, 성장 초기 단계 기업은 얘기가 다르다. 현재 재무제표나 담보력이 부족해도 앞으로 수주와 현금흐름이 좋아질 기업을 먼저 찾아내야 한다. 은행들이 기업여신 심사조직에 '은행원 아닌 전문가'를 끌어들이는 이유다.

KB국민은행은 지난 3월 특허법인과 대기업 연구개발(R&D) 경력을 보유한 석사 출신 변리사를 첨단전략산업 심사 전문인력으로 채용한 데 이어 추가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엔 증권사 출신 이차전지·에너지·화학 분야 전문가를 영입했고, 인프라 투자 분야에서도 17년 경력의 전문가를 충원했다. 기존에도 기업상품부에 변리사 9명과 박사 3명을 포함해 20명의 기술평가 전문위원을 두고 있다.

심사 기준도 바뀌고 있다. 국민은행은 생산적 금융 대상 약 1000개 업종을 별도로 분류하고 이를 다시 성장성 등에 따라 4개 영역으로 세분화했다. 신용등급이나 담보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생산적 금융 대상 업종은 대출 문턱을 낮추고, 새 산업분류를 KPI와 여신심사, 금리 결정 등에 적용한다.

신한은행도 산업 전문가를 여신심사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현재 초혁신경제지원팀에는 삼성전자·현대중공업 등에서 근무한 변리사가, 산업분석 조직에는 삼성전자·SK온 경력의 변리사가 배치돼 있다. 기업여신심사부에서는 변리사 3명과 약사 1명, K컬처 애널리스트 1명 등 산업분석 전문가 5명을 채용해 반도체·바이오·의약품 등의 여신심사를 지원한다.

하나은행 역시 기업여신심사부에 산업전문 심사역을 채용 중이다. 변리사와 회계사 등 전문자격을 갖추거나 무형자산의 가치 분석·평가가 가능한 인력이 대상으로, 이르면 다음달 1~2명이 입행할 예정이다. 기업여신심사부에는 첨단전략산업 전담 심사팀도 운영하고 있다.

우수한 기업을 먼저 찾아낸 영업점에는 인센티브를 준다. 하나은행은 생산적 금융 대상 가운데 242개 '코어 첨단산업' 업종을 별도로 분류해 영업점에 타깃 법인 리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해당 기업에 신규 여신을 공급하면 영업점 평가 때 실적을 실제 취급액의 1.2배로 인정한다. AI·바이오 등 국가전략산업을 대상으로 한 전용 특판대출도 신설했다. 은행원이 기존 거래기업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성장기업을 직접 발굴하도록 유인을 만든 것이다.

우리은행은 외부 전문가 영입보다 기존 인력의 전문성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생산적금융기업영업본부와 기업영업전략부 내 생산적금융지원팀이 기업 발굴과 영업전략을 담당하고, 중기업심사부에는 별도의 생산적금융 전담 심사반을 두고 첨단산업·혁신기업의 사업성과 성장 가능성을 평가하고 있다. IB그룹의 생산적금융투자부에서는 대출뿐 아니라 지분투자와 펀드, 프로젝트금융 등도 검토한다.

우리은행은 지난 4월 생산적 금융 대상 업종을 기존 343개에서 471개로 확대했다. 올해 상반기부터 생산적 금융 취급 실적에 가중치와 별도 가점을 주고, 관련 법인을 담당하는 기업지점장 평가기준도 신설했다.

NH농협은행은 아예 여신심사부 내에 '전략산업심사국'을 신설했다. 미래전략산업과 지역특화산업별 전담 심사역을 운영해 업종 전문성을 높이고, 영업점에는 산업분석 자료를 제공한다. 전국 심사역 200명을 대상으로 경제·산업 전망과 부실 사례 교육도 진행했다.

평가의 무게중심도 과거 실적에서 미래 성장성으로 옮기고 있다. 농협은행은 올해 인수금융 신용평가모형을 자체 개발해 기업의 미래 현금창출능력과 사업 성장성을 중심으로 분석하도록 했다. 첨단전략산업 지원 대상도 기존 124개 업종에서 전·후방 산업을 포함한 269개 업종으로 두 배 이상 확대했다. 생산적 금융 업종에 여신을 취급하면 KPI상 실적 가중치를 주고, 특별우대금리 0.2%포인트와 영업점 여신 전결권 120% 확대도 적용한다.

이 같은 변화의 핵심은 기업을 평가하는 '눈'이다. 바이오·반도체처럼 대규모 선투자가 필요하거나 신규 발주를 계기로 급성장할 수 있는 기업은 현재 재무제표와 담보가치만으로 미래를 판단하기 어렵다. 기술과 산업 전망, 수주 가능성, 미래 현금흐름까지 읽어내 남들보다 먼저 자금을 공급하는 능력이 새로운 기업금융 경쟁력이 되고 있다.

예대마진만으론 못 큰다…'대출하는 은행'서 '투자하는 금융'으로

국내 금융그룹과 미국 금융그룹의 영업이익 중 비이자이익 비중 차이/그래픽=이지혜

기업금융으로 돈길을 돌리는 것만으로 국내 금융사의 성장방식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계에 빌려주던 돈을 기업에 빌려줘도 결국 대출에서 이자를 받는 구조는 같다. 기업금융 확대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들려면 좋은 기업을 발굴해 돈을 빌려주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직접 투자하고 기업공개(IPO)와 회사채 발행까지 성장 과정에 참여하는 금융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의 상반기 총영업이익에서 비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6%·30%·25%·19%에 그친다. 각 금융그룹 전체 계열사에서 각 은행이 차지하는 당기순이익 비중은 56%·65%·81%·78%에 달한다.

은행에서 대출자산을 늘리고 예대금리차를 통해 이익을 키우는 전통적인 방식이 국내 금융그룹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올 상반기 4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의 기업대출은 25조9000억원 늘어난 반면 가계대출은 4조6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가계에서 기업으로 대출 포트폴리오가 이동했지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수익구조 자체는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반면 미국 대형 금융사는 투자은행(IB)과 자산관리, 트레이딩 등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수익을 거둔다. 미국 대형은행인 JP모건의 경우 올해 상반기 순이자이익이 508억7700만달러인 데 비해 비이자이익은 563억600만달러로 오히려 더 많았다. 이어 뱅크 오브 아메리카(BofA)는 비이자이익 비중이 49%, 웰스파고 45%, 씨티은행이 34% 수준이었다.

사업구조의 차이는 국내 금융지주가 해외 투자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 배경 가운데 하나로도 꼽힌다. 지난 6월 말 주가 기준 미국 증시에 상장된 KB·신한·우리금융의 주가수익비율(PER)의 단순평균치는 9.89배로 미국 4대 은행 15.05배의 약 66% 수준이었다. 주가순자산비율(PBR) 역시 국내 3사가 0.91배로 1배를 밑돈 반면 미국 4대 은행은 1.59배였다.

한 국내 대형금융지주 IR 담당 임원은 "이자이익은 금리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금리가 올라갈 때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반대로 금리가 떨어지면 평가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며 "JP모건처럼 수수료와 IB 수입이 많은 금융사와 같은 기준에서 볼 때 국내 금융사의 포트폴리오는 디스카운트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기업금융 확대가 이자이익에 치중된 수익구조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은행이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먼저 발굴해 대출을 공급한 뒤 지주 계열 벤처캐피탈(VC) 등이 지분을 투자하고, 기업이 성장하면 지주 계열 증권사가 IPO와 회사채 발행, 인수합병(M&A) 등 자본시장 거래를 맡는 방식이다. 하나의 기업과 대출 관계에 그치지 않고 성장 단계에 따라 투자수익과 IB 수수료 등으로 수익원을 넓히는 구조다.

금융사가 비이자 사업을 확대하면 자본 활용도도 높일 수 있다. 담보가 충분한 대출은 위험가중자산(RWA)을 적게 소모하지만 그만큼 기대수익도 낮다. 반대로 지분투자 등 모험자본은 더 많은 자본을 요구하고 손실 위험도 크지만 기업을 제대로 선별할 수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높은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

다른 국내 대형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모험자본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면 에쿼티처럼 위험가중치(RW) 400%가 잡히는 사업 등을 통해 더 많은 수익을 확보해 자본 효율을 높일 수 있다"라며 "비이자이익 비중이 안정적으로 30% 선까지 올라오면 포트폴리오를 갖춘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생산적 금융을 추진하고 기업은 성장자금을 확보할 통로를 찾고 있다. 금융지주에게는 기업을 발굴하고 투자해 이자이익에 편중된 수익구조를 넓힐 기회다. 지금 열린 기업금융의 시간을 '대출하는 은행'에서 '투자하는 금융'으로 넘어가는 계기로 만들 수 있느냐가 글로벌에서 인정받는 금융그룹으로 성장하는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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