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업무를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하는 시대다.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동네 은행마저 문을 닫으면 어디로 가야 할까.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에 청년들의 첫 일자리는 누가 책임져야 할까. 금융감독원 신입 채용 논술시험에 등장한 질문들이다. 디지털 금융의 편리함 이면에 있는 금융소외 문제부터 AI 확산에 따른 청년실업까지 최근 우리 사회가 마주한 고민이 시험지에 담겼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치러진 금감원 신입 종합직원(5급) 채용 논술시험에서는 '디지털 금융과 고령층 금융소외', 'AI 확산과 청년실업'을 주제로 한 문제가 출제됐다. 논술 문제를 비롯한 시험은 공정성 확보를 위해 외부 출제위원이 관여한다.
첫 번째 문제는 '은행에 가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오히려 은행을 이용하기 어려워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터넷뱅킹과 모바일뱅킹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고령층 등 금융취약계층의 디지털 문해력은 일반 소비자보다 낮다는 점이 제시됐다.
최근 과징금 부과가 최종 확정된 홍콩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불완전판매 사태도 등장했다. 고령층 등 취약계층에 불완전판매 피해가 집중됐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 보호가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담았다.
은행 점포 폐쇄 문제도 빠지지 않았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은행 점포 한 곳이 문을 닫으면 금융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대도시보다 훨씬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역 주민의 의견청취 절차를 강화하는 등 금융당국이 은행 점포 폐쇄를 규제할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를 바탕으로 금감원과 금융회사, 금융소비자가 각각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답하도록 했다.
이는 실제 금융당국의 정책 현안과도 맞닿아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 점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고령층과 지방 거주자의 금융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점포폐쇄 사전영향평가와 지역 주민 의견청취 절차를 강화했다.
AI가 청년 일자리 뺏는다?…'직업교육 비용' 누가 내야 하나
두 번째 문제는 AI가 가져올 일자리 변화를 다뤘다. AI가 초급 수준의 업무를 대체하면서 청년들의 취업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취지다. 그렇다고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기존 일자리를 무조건 지키는 것도 해법은 아니라는 점을 짚었다. AI가 대체할 수 있는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늘리거나 과거의 기술에 머무르면 오히려 노동생산성과 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AI가 청년실업의 주범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반론도 제시했다. 기업의 경력직 선호와 채용 비용 부담 등 다른 요인이 청년 취업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AI 확산이 실제로 청년실업을 증가시켰다는 근거도 뚜렷하지 않다는 내용이다.
질문은 AI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로 이어졌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한 직업교육과 멘토링이 필요하지만 그 비용을 기업에만 떠넘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주요 과제로 내세운 금감원의 신입직원 채용시험에서도 이같은 사회적 고민이 등장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두 주제를 관통한 고민은 기술 발전으로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