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모태펀드, 개운치 않은 영화투자

전병윤 기자
2016.05.04 06:00

'중소기업청, 한국벤처투자, OO창투…' 영화 첫 화면에 공동투자자로 자주 올라오는 기관명이다. 정부 출연금으로 조성한 중소·벤처기업 투자금인 모태펀드가 영화 투자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벤처투자는 모태펀드 운영기관, 중소기업청은 한국벤처투자의 상급기관이다.

지난해 모태펀드는 문화계정(주로 영화를 투자하는 계정)을 통해 영화제작에 896억원을 투자했다. 지난해 개봉한 한국영화 232편의 총 제작비 4617억원과 비교하면 전체 제작비의 20% 가량을 담당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신력이 높은 모태펀드의 참여 이후 동반 투자에 나선 벤처캐피탈 등의 투자까지 고려하면 영화 제작시장에서 모태펀드의 실제 영향력은 더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투자실적은 신통치 못하다. 지난해 '베테랑'과 '암살'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대박을 터뜨리는 가운데서도 한국영화의 전체 투자 수익률은 -7.2%로 처참했다. 수익성 분석이 가능한 영화 73편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가 16편에 불과했고, 총 제작비 중 절반을 까먹은 영화가 44편에 달했다. 무려 90% 이상 손실을 본 영화가 12편일 만큼 영화산업의 대박과 쪽박이 극명하게 갈렸다.

모태펀드를 중심으로 한 벤처투자업계가 한국영화 발전에 적지 않은 공로를 했음에도 투자자에게 돌아오는 몫은 초라하기만 하다. 벤처캐피탈의 영상 분야 회수수익률(2014년 기준)은 19%로 전체 평균 51%를 한참 밑돈다. 최근 한국벤처투자가 제작사와 특수관계에 있는 영화감독에게 지급하던 인센티브를 금지한 것은 이런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영화감독이 공적자금인 모태펀드로부터 투자를 받아 흥행에 성공한 후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제작사 수익에 더해 연출료, 인센티브까지 3중 수입원을 통해 수십억원을 번 걸 눈감아줬다는 얘기 아닌가.

모태펀드가 영화시장에서 눈먼 돈 취급을 받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지난해부터 대기업 투자배급사가 맡은 영화에 모태펀드의 투자를 금지한 것도 역설적이긴 마찬가지다. 지지난해까지는 중소·벤처기업 육성자금인 모태펀드가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간접적 지원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셈이다. 모태펀드가 유명 감독·제작사·투자배급사가 주도한 영화에 투자하는 걸 용인해야 하는지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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