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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준비됐지만 사업화할 방법이 없다. 업계는 이미 출발선에 서 있는데 제도만 멈춰 있다"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 관계자)
올해 상반기 중 통과가 예상됐던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이 지연되면서 국내 웹3·블록체인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 수요와 기술 준비는 이미 이뤄졌지만 법·제도 방향이 정리되지 않으면서 금융기관과 추진하던 사업 논의가 보류되거나 투자 집행이 지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 지연으로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 중심으로 신규 사업과 투자유치가 사실상 '올스톱' 상태에 들어갔다.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은 기업·금융기관 등이 디지털자산 서비스를 구축·운영할 수 있도록 블록체인 기반 기술과 시스템을 제공하는 기업을 뜻한다.
조진석 한국디지털에셋(KODA) 대표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이 통과되면 OTC(장외거래), 자산 운용, 프라임브로커리지(PB), 공시·평가 등 다양한 디지털자산 금융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해왔다"며 "입법 지연으로 관련 사업을 준비하던 기업들 역시 대부분 계획을 보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은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신고된 가상자산사업자(VASP) 중심으로 운영되며 거래소·커스터디(보관·관리)·지갑 서비스 등 일부 영역에만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업계에서는 기술 완성도와 시장 수요는 이미 충분한 상태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은행·증권사 등 전통 금융기관들도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며 올해 상반기 여러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과 실증사업(PoC)을 진행했다. 다만 법과 제도가 정리되지 않아 상용 서비스 출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 관계자는 "입법 지연으로 사업 기회와 매출 발생 시점도 함께 밀리고 있다"며 "인프라 기업 입장에서는 시장 자체가 아직 열리지 않은 상황이라 고객사(금융사)들도 실제 계약이나 서비스 출시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금융사들의 PoC(기술 검증)만 지원하고 있는 상태다. 사실상 계속 리허설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법안이 올해 1분기 중 통과됐다면 더 많은 고객사를 확보해 실제 매출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법 지연으로 사업화가 늦어지자 해외로 눈을 돌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 김종협 파라메타 대표는 "사업이 지연되면서 이와 연계된 투자 라운드도 함께 보류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현재 국내 사업을 계속 추진하고는 있지만 입법이 연내 통과되지 않는다면 사업 방향을 해외 시장에 맞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은 이미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디지털자산 제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4일 미국에서는 디지털자산 시장 구조를 규정하는 '클래리티 법안'의 상원 표결이 진행됐다. 앞서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운영에 대한 연방 차원의 포괄 규제 법안인 '지니어스 법안' 역시 통과되며 시행을 앞두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가상자산 규제 체계인 MiCA를 시행하며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 기준 등을 마련한 상태다. 일본 역시 자금결제법 개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했으며, 대만·필리핀·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도 규제샌드박스를 기반으로 자국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실험에 나서고 있다.
반면 국내는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 거래소 내부통제 문제 등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이 미뤄지고 있다. 여기에 오는 6월 지방선거 일정과 맞물리며 상반기 내 법안 통과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후 상임위원회 재구성과 함께 정무위원 명단이 변경될 경우 법안 논의가 다시 지연될 가능성 역시 제기된다.
조 대표는 "블록체인 산업은 국경이 없는 만큼 자본과 사업이 빠르게 해외로 이동할 수 있다"며 "입법 지연 자체가 이미 산업 경쟁력 악화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