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바꾼 정관변경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 칼날로 돌아온 것.
대한항공은 1998년 제36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사 및 감사의 선임방법 변경’ 안을 승인했다. 선임 방식을 보통결의에서 특별결의로 바꿨다.
이사 선임 방법을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의 수와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찬성으로 바꿨다. 대부분 기업이 출석 주주의 과반수 찬성표만 확보하면 되는 보통결의를 채택한 것보다 한층 강화된 방식이다.
당시 정관 변경이 27일 열린 정기주총에서 조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을 막았다. 조 회장은 이날 주총에 참석한 의결권 있는 주식 총수의 7004만주 중 64.09%를 획득하며, 3분의 2 이상을 얻지 못했다. 176만주가 부족했다.
보통결의 방식이었다면 참석 주주의 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충분히 통과될 수 있었다. 강화된 이사선임 방식이 조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대한항공 이사 선임 강화는 1997년 IMF 외환위기와 관련이 있다. 외환위기 당시 M&A(인수합병) 공격을 우려해 보통결의를 특별결의로 바꿨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항공법에 국적 항공사는 외국인이 소유할 수 없는 만큼 국내 M&A를 우려에 둔 것으로 보인다.
형제간 계열 분리도 정관변경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99년 조 회장이 대한항공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한진그룹의 핵심인 대한항공을 맡았고, 2002년 고(故) 조중훈 회장의 타계 이후 한진그룹은 한진중공업(차남 조남호), 한진해운(3남 조수호), 메리츠금융(4남 조정호) 등으로 나눠졌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바꾼 정관이 20년 후 조 회장의 경영권을 찌른 창이 된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다른 기업처럼 보통결의였으면 이런 상황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결국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