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이젠 대한항공 경영에 쉽게 관여할 수 있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02.03 05:40

[5%룰 개정안 시행]경영 참여 쉬워져 시세차익 반환 의무지는 '10% 룰'에서도 자유로워졌다.

지난해 2월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 대리인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국민연금은 지난해 2월 한진칼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 앞서 조양호 당시 회장에 대한 해임 건의 등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선언했다. 하지만 실제 국민연금이 한 행동은 한진칼의 정관변경을 위한 주주제안 수준으로 그쳤다.

국민연금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 제147조의 5%룰 다음 단계에 있는 자본시장법 제172조(내부자의 단기매매차익반환)의 '10%룰' 때문이었다.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투자자는 투자목적 등을 명시하고, 경영참여 목적의 투자자는 더 강한 공시의무를 지도록 돼 있다. 지난해말 기준 국민연금이 지분 10%를 넘어선 기업은 삼성전자와 포스코 등 98개 기업이고, 5%를 넘는 기업은 현대차나 SK하이닉스 등 313개에 달한다.

5%를 넘어 10%에 도달하면 10%룰을 적용받게 된다. 경영 참여를 선언한 주요주주(상법상 지분 10% 이상이거나 이사 감사 선임과 해임 등 주요 경영사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 임직원 등)는 자격을 얻은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매수, 매도에 따른 단기차익을 해당 법인이 반환 청구할 경우 이를 반환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 주식을 1주라도 사고팔 경우 5일 이내에 신고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 경영참여를 선언할 경우에는 더 많은 의무가 주어진다.

당시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 7.34%, 대한항공 지분 11.56%를 보유하고 있었다. 한진칼의 경영에는 참여했지만, 대한항공 경영참여는 선언하지 못했다.

단순투자였던 국민연금이 투자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꾸고 경영에 적극 개입할 경우 한진칼은 공시의무만 강화되지만, 대한항공은 지분율이 10%를 넘었기 때문에 최근 6개월 사이에 발생한 시세차익을 반환해야 한다. 또 향후 6개월 이내에 다시 대한항공 주식을 살 경우 그 사이에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손실회피에 대한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즉 경영참여 투자자와 '일반·단순' 투자자의 가장 큰 차이는 이 국민연금 케이스처럼 단기 매매차익에 대한 반환 책임이 있느냐 없느냐 여부다.

2019년 3월 지분 현황

경영참여 목적으로 신고한 경우 주식 취득 후 6개월 혹은 해당 종목 매각 후 6개월 이내에 매수하여 얻은 이익까지 해당 회사가 반환을 청구할 경우 이익의 산정기준, 반환 절차에 따라 반환하도록 돼 있다.

당시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수탁위 회의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주식을 통해 얻은 단기 매매차익은 △2016년 123억원 △2017년 297억원 △2018년 49억원 등 총 469억원 정도다. 연간 평균 100억원 이상의 차익이 반환 대상이 되는 상황이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당시 "10%룰을 염두에 뒀다"며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행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국민연금의 수익성 제고로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경영권 참여는 선언하지 않고, 한진칼 경영참여만 선언하면서 주주제안으로 "이사가 회사 또는 자회사 관련 배임·횡령의 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때 결원으로 본다"는 내용으로 정관변경을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자본시장법 제154조 시행령 개정으로 경영참여를 선언하지 않고도 국민연금이 얼마든지 주주제안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번에 시행된 개정안에는 △공적 연기금 등이 사전에 공개한 원칙에 따라 진행하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변경 등은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범위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10%룰 때문에 경영참여를 선언하지 못했던 대한항공이나, 경영참여를 선언하고 주주제안을 했던 한진칼에 대해 앞으로 국민연금은 '일반투자'로만 신고한 채 경영에 관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조현태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간 경영권 분쟁의 승부처로 꼽히는 올해 3월말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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