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취저' 당했다…삼성이 2만여개 냉장고 조합 만든 이유

심재현 기자
2020.09.12 09:00

[MT리포트-가전특명, MZ세대를 잡아라]③

가전업계가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용어) 마케팅에 몰두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전략이다. 신흥 소비권력으로 떠오른 MZ세대를 타깃으로 "다 바꿔"를 외치는 것이다.

구체적인 전술은 '마이크로 타깃팅'이다. MZ세대의 일거수 일투족을 분석해 맞춤형 제품을 낸다. 기존의 성공 공식이 소품종 대량 생산이었다면 최근 방식은 맞춤형 특화 생산이다.

정답은 2030 '취저'…"맞춤형으로 다 바꿔"
삼성전자 모델이 지난해 8월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아트슈퍼마켓 사전행사에서 비스포크 냉장고를 선보이고 있다. 맞춤형 냉장고 '비스포크'(BESPOKE)에 디자인 스튜디오 슈퍼픽션의 캐릭터를 적용한 비스포크 슈퍼픽션 에디션은 1도어, 2도어, 4도어 키친핏 등 10개 모델로 구성된다. 가격은 174만9000~419만9000원.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지난해 출시해 이른바 '대박'을 친 냉장고 '비스포크'가 이런 마케팅의 성공 사례다. '비스포크'(bespoke)라는 단어의 의미 자체가 '개인의 주문에 따라 맞춘'이라는 뜻이다. 이 냉장고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냉장고 문 색깔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모듈을 어떻게 조립하느냐에 따라 2만2000개의 조합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신발 마니아층을 겨냥한 신발관리기도 준비하고 있다. LG전자가 지난해 출시한 수제맥주제조기도 비슷한 사례다.

'취저'(취향 저격의 줄임말)의 성과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비스포크 냉장고 출시 이후 삼성 냉장고 국내 매출은 30% 늘었다. 비스포크의 후속으로 나온 그랑데 AI 세탁기와 건조기 매출도 각각 35%, 60% 증가했다. MZ세대와 직결되는 혼수 가전의 경우 올 들어 지난 6월까지 매출이 지난해 상반기보다 65% 늘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제품 기획 단계부터 광고·홍보까지 MZ세대 마케팅이 적중한 성과"라고 말했다.

결제는 엄빠가, 결정은 자녀가…MZ세대 바잉파워

MZ세대의 취향에 초점을 맞췄다고 해서 이런 마케팅의 호소력이 젊은 세대만 향하는 것은 아니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결혼 10년차를 맞아 신혼 때 마련했던 가전을 바꾸는 부부들 사이에서도 맞춤형 가전 수요가 높다"고 전했다. MZ 마케팅이 젊은 층을 넘어 '엄빠'(엄마와 아빠의 합성어) 세대에도 먹힌다는 얘기다.

가전제품의 기능이 복잡해지면서 가정 내 구매 결정권이 경제권을 쥔 50~60대 부모들이 아니라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고 정보 검색에 능한 MZ세대 자녀들로 넘어가고 있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나이든 부모들이 제품을 선택할 때 최신 트렌드에 민감한 자녀들에게 의지한다는 얘기다.

IBM기업가치연구소가 지난해 전세계 13~21세 1만5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서 부모가 식음료(77%·복수응답 허용), 가구(76%), 생활용품(73%) 등을 구입할 때 영향을 미친다는 답변이 절반을 넘었다.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노년층보다 MZ세대에 공을 들이는 배경이다.

똑같은 건 싫어…"'나만의 제품' 변화 더 빨라질 것"
LG전자는 지난 8월13일 국제 청소년의 날(8월12일)을 기념해 MZ세대가 연출하고 출연하는 'Life’s Good' 캠페인 영상을 글로벌 유튜브 계정을 통해 공개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MZ세대'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에 출생한 이들로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10대 감독이 연출한 이 영상은 환경 운동가, 여성 인권 운동가, 미디어 아티스트, 다국적 밴드 등으로 활약하고 있는 MZ세대들의 도전과 열정을 담았다. /사진제공=LG전자

삼성전자의 경우 전세계 7개 디자인 연구소와 트렌드 랩, 사업부별 상품기획팀 등을 통해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해 제품에 반영한다. 지난해부터 불붙은 MZ세대 마케팅에는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운영한 '밀레니얼 커미티', 집단지성 플랫폼 '모자이크'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LG전자는 CEO(최고경영자) 직속 디자인경영센터 산하에 라이프소프트리서치(LSR)실을 운영한다. 공 모양의 얼음을 만드는 아이스냉장고와 벽에 밀착되는 올레드TV 등의 아이디어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외부의 시각을 반영하기 위한 신가전 고객 자문단도 운영 중이다.

기업들이 제품 기획과 제작, 마케팅을 위해 분석하는 데이터의 양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삼성전자가 지난 7월 출시한 '뉴셰프 컬렉션' 냉장고를 기획할 때 분석한 데이터는 200만개에 달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취향이 제각각인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솔루션이 구체적이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필수"라고 말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한 잠재 욕구를 제품으로 충족시켜주기 위해 기업들이 제품을 세분화하는 것"이라며 "자기 욕구에 솔직한 MZ세대의 구매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런 변화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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