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오늘(21일) 서거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는 머니투데이의 첫 기사이자 첫 기고의 당사자였다. 그는 2000년 1월 1일 0시 머니투데이에 '세상의변화가 여전히 멋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정 명예회장은 “인터넷이 세상의 커다란 전환점에 해당한다는 점을 평생 쌓아온 사업가적 안목으로 분명히 인식한다”며 “새 천년에도 나와 같은 기업인이 또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열흘 후인 2000년 1월 10일에는 '모두 승자가 될 수는 없다'는 칼럼에선 '신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그의 정신을 담은 두번째 기고를 내보냈다.
다음은 20년이 지난 후에도 기업가의 안목과 정신이 살아 숨쉬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첫번째 기고 글이다.
우선 나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1915년 생이니까 내 나이 이제 여든 다섯, 이 나이에 2000년의 태양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하다. 더구나 나는 만년을 즐길 자격은 인정받을 정도로 저 어려웠던 젊은 시절부터 최근까지 한국경제에 일정한 자취를 남기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복 받은 사람들은 요즘의 젊은이들이다.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미래의 시간을 갖고 있다는 것, 그것도 새 천년의 초입에 그러한 기회가 왔다는 것은 커다란 복이다.
새 천년의 출발에 맞춰 기자들은 있으되 종이신문은 발행하지 않고 인터넷에만 기사가 떠있는 ‘인터넷 신문’이 나오게 됐다니 반길 일이다. 나는 인터넷을 직접 다루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시대 흐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최근 ‘인터넷 소용돌이’가 세상의 변화과정에서 커다란 전환점에 해당한다는 점을 평생 쌓아온 사업가적 안목으로 분명히 인식한다.
천부적인 사냥꾼은 큰 짐승이 다니는 길목을 알고 훌륭한 어부는 물고기떼의 흐름을 잡아내듯이, 뛰어난 사업가라면 새 천년의 화두를 인터넷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내 세대가 자랄 때 겪었던 절대적 궁핍의 위협 없이 요즘 젊은이들이 인터넷의 가능성 앞에서 땀을 쏟으며 노력을 경주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나도 덩달아 흐뭇하다.
난 경영인으로서 공장 말뚝을 직접 박아 보는 것을 매우 중시했다. 갖가지 어려움을 딛고 척박한 땅에 자기 공장의 말뚝을 직접 박으며 땀 흘려 공장을 지어볼 때 단순한 장사꾼을 탈피해 비로소 기업인이 된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그래서 부단히 건설 자동차 조선 전자산업 등에서 막대한 자금을 들여 공장을 지어왔다. 주변에서 제대로 안될 것이라고 만류하거나 노골적으로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에도 이러한 신념에서 나는 일을 밀고 나갔다.
아직도 난 나의 판단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란 대단한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정보화 산업, 인터넷 산업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 산업은 전통적인 분류로 따질 때 공장 말뚝이 있는 산업이 아니다. 아니, 그러한 과거 잣대에 의한 분류가 무의미한 산업이다.
세상의 변화란 멋진 일이다. ‘공장을 직접 지어봐야 기업인이 된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시대 변화로 인해 그러한 생각을 젊은이들에게 꼭 강권할 뜻은 없다.
그러나 공장을 지어봐야 기업인으로서 사고와 행동의 호흡이 길어진다. 짧은 생각, 가벼운 행동을 스스로 자제하게 된다. 기업을 하려는 사람이 호흡을 짧게 가져가서는 결코 안된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인터넷 사업에 뛰어든 젊은이들 중 일부가 일확천금을 꿈꾸며 ‘작전성 사업’을 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요즘 젊은이들은 시대 변화로 인해 진정한 기업인이 되기 위해 꼭 공장을 지어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스스로의 훈련을 통해 시골 황소와 같은 우직함을 몸에 익혀야 한다.
이 노인네가 평생 소중하게 여겨온 공장 말뚝론을 새 천년을 맞아 새롭게 할 테니 부디 젊은이들도 기업경영을 단기적으로 목돈 한번 챙기는 정도로 간주하는 습벽을 물리치라고 당부하고자 한다. 시대의 변화가 멋진 것이지만 거기에서 좋은 면들을 섭취해야지, 일시적으로 이용해 돈을 벌겠다고 하다간 오히려 그 변화에 스스로 먹히거나 매몰되고 만다.
괜한 말이 아니라 나는 그러한 예들을 과거에도 무수히 보아왔다. 엄청난 변화의 시기에 새로운 면모의 젊은 기업인들이 대거 탄생하길 바라며 이 말을 해둔다. 새 천년에도 나와 같은 기업인이 또 나올 것이라고확신한다. 그래야 한국경제가 우뚝 선다.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