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는거 처음 봤어요" 불꺼진 석포제련소를 주민들이 밝힌 이유

봉화(경북)=김도현 기자
2021.11.09 14:10

[르포]조업 정지 후 친환경 공장으로 거듭나는 영풍석포제련소

영풍석포제련소 2공장. 아연괴 완성단계 설비가 멈춰있다. /사진=김도현 기자

경북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을 때 서울을 출발해 목적지에 다다르자 어느새 주변이 환했다. 석포는 봉화 시내보다 강원도 태백과 가까울 정도로 첩첩산중이다. 셀 수 없는 터널들과 구비 치는 고갯길을 지나고 나서야 석포에 당도했다. 초입부터 늘어선 알록달록한 현수막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지역경제를 책임지는 영풍석포제련소를 격려하는 메시지였다.

이곳 제련소는 8일 오전 0시부터 10일간 조업이 중단됐다. 물환경보전법 위반에 따른 경북도의 처분이었다. 현수막에는 '주눅 들지 말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함께 나가자'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흥미로운 점은 메시지의 주체였다. 협력업체 현수막 사이로 '○○이발소', '△△식당' 등이 내건 현수막들이 눈에 띄었다. 소음·분진 등을 이유로 공장과 인근 주민들의 다툼을 주로 봐 왔던 터라, 영풍과 지역민의 유대관계가 더욱 특별해 보였다.

영풍의 반성과 석포 주민과의 '새로운 50년 동행'

기자와 만난 주민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본인이 석포에서 얼마나 살았는지를 얘기했다. 이어 석포제련소가 멈추는 모습을 생전 처음 보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말끝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영풍석포제련소는 1970년 문을 열었다. 한시도 가동이 중단되지 않고 제품 생산을 이어 왔다. 지난 7일 오후 11시에는 조업정지 전 마지막 교대 근무조의 퇴근 시간에 맞춰 소등식이 진행됐다. 석포리의 밤하늘을 밝혀 온 제련소 불빛이 처음으로 꺼지는 순간이었다.

가장 어두운 날로 기록될 것 같았지만, 이날 석포리의 밤은 어느 때보다도 밝았다. 제련소를 끼고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 긴 불빛 행렬이 이어졌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제련소 직원들과 석포 주민 500여명이 준비해 온 손전등을 꺼냈다. 51년째 마을을 향했던 제련소 불빛이 꺼지자, 마치 보답이라도 하듯 주민들이 공장을 향해 불을 비췄다.

영풍석포제련소 인근 주민들이 지난 7일 자정무렵 불이 꺼진 제련소에 손전등으로 불을 비추고 촛불을 밝힌 모습. /사진=영풍

석포 지역민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 될 아연생산 중단 첫날 아침이 밝았다. 생기를 잃을 것이란 예측과 달리, 이날 석포리는 유독 북적였다. 영풍은 생산이 중단됐지만, 구성원과 협력업체 직원들의 임금 보장을 위해 정상출근을 지시했다. 평소와 같은 인원들이 제련소 안팎을 오갔다. 마을을 평소보다 더욱 북적이게 한 이는 외지인이었다.

영풍 관계자는 "공장 가동을 멈추는 동안 제련소 전반의 시설물 보수를 실시하게 됐고, 이 때문에 평소보다 많은 외지인들이 석포를 찾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영풍석포제련소 임직원들은 조업정지 10일을 새로운 반세기를 위한 기회의 시간으로 만들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날 오전 8시 30분 제련소 1공장 앞에서 노사가 한자리에 모여 '선진도약 선서식'을 가졌다. 선서식의 슬로건은 '잠깐 멈추고 안전화 끈을 조입니다. 그리고 다시 뛰겠습니다'였다. 임직원은 "모두가 환경·안전·노동 관리자라는 주인의식을 갖겠다"면서 "환경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 안전하고 생산성 높은 직장을 만들자"고 선언문을 낭독했다.

강철희 영풍석포제련소 노조위원장은 "노사가 함께 환경 및 안전 분야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더 나은 개선방안을 찾아 직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영민 영풍석포제련소 소장(부사장)은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를 계기로 더욱 철저한 환경관리를 통해 최고의 글로벌 친환경 기업으로 재탄생하겠다"면서 "구성원 각각이 환경관리자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소개했다.

'폐수 제로(0)' 영풍의 무방류 도전장
영풍석포제련소 '공정사용수 무방류시스템' /사진=김도현 기자

다짐이 전부는 아니었다. 선서식을 마치고 가동이 중단된 영풍석포제련소 내부를 둘러 봤다.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각종 시설물 사이로 건립된 지 얼마 안 된 시설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영풍이 지난해 320억원을 들여 도입한 '공정사용수 무방류시스템'이다.

현재까지 총 3기가 건설됐다. 내년 상반기까지 150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4호기를 완공할 계획이다. 지어진 3기 중 2기만이 가동한다. 나머지 1기는 예비기계다. 설비 한 대에 이상이 생겨도 폐수를 낙동강에 흘려보내지 않기 위한 고심의 흔적이었다. 추후 계획된 설비가 모두 들어서도 가동에 여유를 둬 폐수방지를 원천 차단한다는 게 영풍의 복안이다.

오염된 공정수가 빗물 등을 통해 지표면을 따라 지하수·하천 등으로 스미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설비도 마련한다. 1공장 외곽 하천 부지 1.1km 구간에 '지하수 차집시설'이 현재 지어지고 있다. 추후 2공장 외곽 1km 구간에도 허가를 받아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습식조업공장 하부에는 타일을 교체하고 3중 안전망을 완비하는 등 수질 개선 분야에만 현재까지 소요된 600억원을 포함해 약 2600억 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영풍석포제련소 가동정지는 오는 17일까지다. 이곳은 연간 40만톤의 아연을 제련한다. 단일공장 기준 세계 4위 규모다. 10일 간의 조업중지에 따른 손실액은 최대 52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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