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전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30여분을 달려 충남 당진시에 도착했다. 점심 때가 돼 시내의 한 식당에 들렀다. 식사를 마치고 사장님에게 물었다. 서북쪽에 유명한 높은 건물이 있다던데 아느냐고. 그는 단번에 '대한전선 공장'이라 답했다. 뭐하는 건물인지를 묻는 질문엔 잠시 멈칫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케이블 실험하는 데 아녀?"
오후 1시쯤 공장 입구에 도착했다. 멀리서부터 보이던 '그 건물'이 한 눈에 들어왔다. 직원에게 물으니 아쉽게도(?) 실험을 하는 곳은 아니고, 초고압케이블 생산 공정 중 핵심인 절연 작업이 이뤄지는 곳이었다. 이름은 수직연속압출시스템(VCV) 타워다. 아파트 55층 수준의 160.5m 높이를 갖췄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절연 공정은 도체에 전기 또는 열이 통하지 않게 해 송전 효율을 키우고 전기적 위험을 차단하는 작업을 말한다. 중력 방향으로 도체를 내려뜨려야 절연체를 균일하게 입힐 수 있어 작업장이 타워 형태로 만들어진다. 타워가 높을수록 냉각·가교 등 작업 구간이 넓어져 보다 빠르게 전선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까 대한전선의 생산 효율은 세계 최고인 셈이다.
타워 21층에 위치한 운영실은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을 방불케했다. 방진복 차림의 작업자들이 모니터를 통해 케이블의 두께와 외경을 확인하고 있었다. 민경훈 대한전선 초고압기술팀 과장은 "엑스레이(X-ray) 장치를 통해 제품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체크한다"면서 "작은 이물질이라도 절연체를 파괴할 수 있어서 반도체 공장 수준의 청결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VCV라인 3기는 풀 가동중이었다. 한 쪽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납품될 275kV(킬로볼트)급 초고압케이블에 대한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대한전선이 지난 9월 수주한 42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로, 2028년 개최 예정인 LA올림픽을 앞두고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추진되는 사업이다.
다른 한 쪽에서는 영국 국영 전력회사인 내셔널그리드가 발주한 400kV급 초고압 케이블 1차분 출고를 위한 작업이 한 창이었다. 런던 전역의 전력 공급 안정화를 위해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으로 대한전선이 지난해 7월 수주했다. 수주 규모는 925억원에 달한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국내 전선업체가 영국에서 수주한 전력망 프로젝트 중 최대 규모"라 말했다.
이날 VCV 타워 외에도 초고압케이블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둘러볼 수 있었다. △신선(구리 나선을 일정한 굵기로 가늘게 만드는 공정) △연선(소선을 일정한 배열 규칙에 따라 꼬아주는 공정) △집합(연선된 분할 도체를 원형으로 모아주는 공정) △절연 △건조(절연과정서 발생한 가스를 제거하는 공정) △금속쉬스(케이블에 알루미늄·납 등을 입히는 공정) △박식층 공정(쉬스 부식 방지를 위해 폴리에틸렌·PVC 등을 두르는 공정) 등이다.
각 공정의 규모에도 놀랐지만 공장 구석구석의 세심함이 특히 돋보였다. 공장 내외를 쉴 새없이 돌아다니는 지게차의 모습이 그랬다. 사고 방지를 위해 차량의 앞뒤뿐 아니라 좌우 사방으로 빨간색의 '안전 불빛'이 켜져 있었다. 입구 정원을 포함한 공장 외관이 케이블을 모티브로 디자인됐다는 사실엔 놀랐고, 일반적인 공장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 채광과 환기 시설에서는 대한전선의 환경보호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내부 설비도 마찬가지였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효율적인 공정 배치와 물류 자동화, 중앙 처리 시스템 등 최첨단의 라인이 갖춰져 있었다. 보다 까다로운 기준을 가진 해외 고객사들이 공장을 방문해도 군소리 하지 않는 이유다. 민 과장은 "국내외 사례를 보며 필요하다면 빠르게 벤치마킹하는 등 더 나은 작업 환경을 위해 지속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은 것에도 주의하는 세심함이 힘이 됐을까. 대한전선의 초고압케이블 생산 실적은 2016년부터 올해까지 연평균 10%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초고압 전력망 프로젝트를 잇따라 따내는 중이다. 15일에도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600억원 규모의 전력망 사업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김윤수 대한전선 생산기술총괄 부사장은 "당진공장은 세계 최대 효율과 생산성을 기반으로 주력제품인 초고압 케이블을 생산하는 대한전선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라며 "향후에는 해저케이블 전용 공장 설립과 글로벌 생산 법인 확충을 통해 전력망 케이블 분야의 경쟁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초고압 케이블 시장이 교류에서 직류로 변화하는 추세에 맞춰 HVDC(초고압직류송전)의 기술개발과 설비 확충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를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