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물론이고 SMR(소형모듈원자로)에 광물까지.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간 경제협력의 범위는 더욱 넓고, 깊어지게 됐다.
25일(현지시각) 미 워싱턴 D.C.에서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 직후 HD현대와 서버러스 캐피탈, 한국산업은행이 함께 하는 '한미 조선산업 공동 투자 프로그램 조성을 위한 MOU(양해각서)'가 체결됐다. 미 조선산업 재건을 위한 수십 억 달러(수 조원) 규모 투자 프로그램을 조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주요 투자 분야는 △미국 조선소 인수·현대화 △공급망 강화를 위한 기자재 업체 △자율운항·AI(인공지능) 등 첨단조선기술 개발 등이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축적된 선박 건조 기술력과 디지털 역량을 바탕으로 미국 조선업의 현대화·첨단화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위한 협력 체제가 본격 가동되기 시작한 모양새다. 삼성중공업도 이날 비거 마린 그룹과 '미 해군 지원함 MRO(유지·보수·정비) 등에 관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26일(현지시간)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JD 밴스 미 부통령 등과 한화 필리조선소를 방문할 예정이다.
K-조선의 미국 투자가 확대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미국에서 선박이 다시 건조되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HD현대가 체결한 MOU의 목적에는 '미국 조선소 인수'가 명시돼 있었다. 백악관은 한화오션이 필리조선소 확장에 7000만 달러를 추가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는 곧 기회다. 미국의 경우 △해군 MRO 시장 규모만 이미 연 20조원 수준에 달하고 있고 △향후 30년간 약 1500조원을 들여 총 364척의 신규 함정을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으며 △전략 상선단을 250척까지 늘리는 동시에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역시 미국산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이 막대한 규모의 발주 중 상당수가 K-조선에 할당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자국 상선·군함의 해외 건조를 제한하는 존스법·번스-톨레프슨법 등의 개정에 속도감있게 나서줄 지 여부가 향후 관건이다.
SMR은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협력 대상으로 급부상했다. 이날 두산에너빌리티는 아마존웹서비스(AWS), 엑스-에너지, 한국수력원자력과 SMR 사업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4개사는 AWS가 약 7억 달러를 투자한 5GW(기가와트) 규모 SMR 상용화 추진 과정에서 손잡는다. SMR 설계, 건설, 운영, 공급망 구축, 투자 등 전 과정에서 협력을 강화한다. 또 두산에너빌리티는 페르미 아메리카와도 원전·SMR 협력을 위한 MOU에 사인했다.
SMR은 전기출력 300㎿(메가와트) 이하급의 원자로로, 건설비용이 싸고 중대사고 확률이 현저히 낮은 미래 에너지원이다. 미국과 중국 간 기술 선점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어서 '기술'을 앞세운 미국과 '원전 노하우'를 보유한 한국 간 협력이 절실하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엑스-에너지 외에 미국의 테라파워·뉴스케일 등과 기자재 공급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SK, HD현대의 경우 테라파워 등과 'SMR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한미 광물 협력도 강화된다. 고려아연은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구매 및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을 위한 MOU를 맺었다. 고려아연은 중국·북한·이란·러시아 이외 국가에서 제련한 게르마늄을 록히드마틴에 공급하기로 했고, 울산 온산제련소에 약 1400억원을 투자해 게르마늄 생산시설을 신설키로 했다. 일각에선 고려아연의 미국 현지 제련소 투자 가능성을 거론한다. 현지 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하거나 노후한 제련소를 복원하는 방식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미 간 미래 산업에서 공급망이 강화된 모양새"라며 "기업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한미동맹의 강화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