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를 두고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SK하이닉스가 HBM 1위 자리를 공고히 하려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첨단 공정을 선제 적용하며 반격을 준비 중이다. '더는 뒤처질 수 없다'는 위기의식도 깔려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HBM4 첫 양산·출하 시점을 내년 2분기로 잡았다. 본격적인 대량 생산은 하반기에 이뤄질 전망이다. 지난달 이미 양산 체제를 구축한 SK하이닉스보다 약 6개월 늦다. 삼성전자 역시 공급 일정을 크게 앞당겨 마이크론보다 빠르게 양산에 들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양산 시점은 고객 물량 선점과 가격 협상력 확보에 직결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양산이 늦은 마이크론이 불리한 위치에 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D램 시장에서는 선두 업체가 제품 공급 초기에는 높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고 후발 업체가 추격하면 가격을 낮추는 '골든프라이스' 전략을 쓰기도 한다.
엔비디아가 HBM4 데이터 처리 속도 기준을 기존 JEDEC 표준(8Gbps)보다 높은 10Gbps(초당 기가바이트)로 요구한 것이 3사 간 신경전에 불을 지폈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빨라지면 발열과 전력 효율 문제를 동반할 수 있는데 업계에서는 기준 상향이 SK하이닉스에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양산 체제를 갖추면서 10Gbps 이상 속도를 달성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데이터 전송 경로를 2배로 늘리고 전력 효율도 40% 이상 개선했다. 또 시장에서 검증된 패키징 기술과 5세대 D램을 적용해 양산 과정의 리스크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HBM4에서 업계 최초로 1c(10나노급 6세대) D램 공정을 적용한 것을 차별점으로 두고 있는데 SK하이닉스가 기존 기술의 안정성을 강조한 셈이다. 그러자 삼성전자도 최대 11Gbps 성능을 확보했고 전력 효율도 40% 높였다는 소식이 퍼졌다. 마이크론 역시 지난달 실적 발표에서 "11Gbps 이상 속도와 업계 최고 수준의 전력 효율을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삼성전자는 GPU(그래픽처리장치와)와 직접 연결되는 베이스다이를 자사 파운드리 4나노 공정으로 자체 생산한 것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고객사 요구나 품질 이슈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베이스다이를 TSMC에서 조달한다. 또 마이크론은 최근 '미국에 기반을 둔 유일한 메모리 제조사'를 강조하고 있다. 자국 제조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존 관행도 뒤엎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음을 차별화 지점으로 삼는다.
메모리 3사의 경쟁이 치열한 이유는 HBM4 시장이 아직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은 것도 영향을 줬다. HBM4는 내년 하반기 양산 예정인 엔비디아 루빈(Rubin) 플랫폼이 사실상 최대 수요처가 될 전망이다. AMD 차세대 AI(인공지능) 가속기도 HBM4를 채택하지만 수요는 엔비디아의 10분의 1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먼저 양산 체계를 갖춘 SK하이닉스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가운데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남은 물량을 두고 경쟁하는 구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SK하이닉스는 이미 고객 샘플(CS) 단계를 통과했고 가격 협상도 막바지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충분한 계약 물량 확보에 실패하면 HBM4 라인 가동률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공급처 다변화가 필요하지만 반드시 3개 업체 모두를 쓸 필요는 없다"며 "퀄테스트(품질 인증)에 투입되는 비용과 시간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한편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HBM 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62%로 1위, 마이크론이 21%, 삼성전자가 17%를 차지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삼성전자가 최근 주요 고객사로부터 HBM3E 인증을 확보했고 내년 HBM4 수출을 앞두고 있어 내년에는 점유율이 30%를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