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망 사업자 입장에서는 데이터센터가 지리적으로 분산 배치되기 원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업자가 프랑크푸르트 지역을 선호합니다. "
독일 송전망운영사(TSO)* 암프리온(Amprion)의 콘체타 베얼러 전략 본부장이 지난 2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한 독일의 '전력망 고민'은 한국과 많은 부분 중첩됐다.
암프리온은 독일 4대 TSO 중 하나로 독일 남서부 산업지역 송전망을 운영한다. 세계 최대 인터넷 접속 지점 중 한 곳으로 데이터센터 부지 수요가 급증하는 프랑크푸르트 지역이 암프리온의 관할 지역이라 전력망 포화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동시에 독일 전체 전력원이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바뀌고 있어 전력 수요와 공급에서의 전방위적 전력 시스템의 변화를 최전선에서 겪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한-독 에너지데이'* 참석을 위해 방한한 베얼러 본부장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만나 독일의 고민과 상황을 들었다.
고민은 우리나라와 유사하나 독일의 해결 속도는 앞서 있다. 베얼러 본부장은 송전망을 현대화하고 확장하는 데 가장 시급한 과제가 "산업 현장과 데이터센터로 전력을 이송할 수 있도록 교류(AC) 및 초고압직류(HVDC)송전 같은 핵심 송전 경로(backbone corridors)를 완성하는 것"이라 했다. 전력 공급처와 수요처 사이의 '고속도로'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독일은 이미 지난 10년 동안 HVDC 사업을 집중적으로 추진해 왔다. 게다가 대부분의 노선을 지중화(지하에 매설) 설계해 주민수용성 문제도 풀었다. 베일러 본부장은 "HVDC 북-남 회선은 독일 미래 에너지시스템의 핵심 인프라"라며 "송전망 계획 측면에서 북부의 남는 풍력 전력을 남부·중부의 산업지역과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소비 지역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북-남 HVDC가 필수적"이라 했다. 이 회선은 변환기로 전기가 갑자기 늘거나 줄 때 주파수를 안정시키고, 지역별로 전압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능도 보유했다.
그는 "향후 몇 년 내 완공될 주요 2개 HVDC를 연결만 해도 2027년 기준 연 7억 유로(약 1조2000억원) 이상 절감이 가능하다"고 했다. 풍력이 북쪽에 많고 전력 수요는 남쪽에 많은 상황에서 송전망이 막히면 전기를 원하는 만큼 흘려보낼 수 없기 때문에 전력망 운영자는 인위적으로 북쪽 풍력발전기는 출력을 줄이고 남쪽 발전소는 억지로 켜서 생산하게 만드는 발전량 재조정(redispatch)을 해야 한다. 북-남을 잇는 전력 고속도로가 생기면 남쪽 발전소를 억지로 돌리는 재조정을 하지 않아도 돼 비용이 절감된다.
송전망 확장·현대화에 '고속도로 건설' 다음으로 중요한 건 "독일 전역의 신규 데이터센터가 전력망에 쉽게 접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꼽았다. 그는 "전력망 관점에서는 지리적으로 분산되기 바라지만 대부분의 데이터 제공업체는 프랑크푸르트 지역에서의 접속을 원한다"며 "이 지역은 부지가 매우 부족함에도 우리는 20헥타르(축구장 약 30개 규모)의 대형 변전소를 여러 곳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미 전력망이 혼잡한 지역 데이터센터가 들어오면 추가로 전력망을 크게 확장해야 하고 비용도 훨씬 많이 든다"며 "이 때문에'데이터센터가 원하는 지역에 자유롭게 들어서도록 놔둬도 되는지, 아니면 전력망 여유가 충분해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지역으로 유도하는 규칙과 인센티브를 만드는 게 맞는지'란 질문이 생긴다"고 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방정부와 함께 새로운 계통접속 규칙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 부연했다.
이와 함께 그는 "현재 배터리 저장사업자들의 막대한 계통접속 신청에 직면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기술들이 불리해질 수 있다"며 "기술 성숙도 기반의 접속 대기열에 법적 확실성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고 했다. 새로운 발전·저장 설비가 전력망에 연결되기 위해 줄을 서는 계통 접속 순서를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미다.
간헐성이 있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의 안정성 강화를 어떻게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이 문제가 (에너지) 공급안보를 보장하는 주요 축인 확정전원은 현재 유럽, 특히 독일이 직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라 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재생에너지 비중이 크게 늘었지만 재생에너지가 확정적 공급에 기여할 수 있는 비중은 높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장장치, 수요측 유연성, 가스·석탄 기반의 전통적 발전을 결합한 기술 조합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야간 등 바람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모두 급감하는 상황에서 충분한 발전용량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또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유망한 기술이지만 아직 개발 단계에 있다"며 "향후 5~10년 내 시스템 공급능력 확보에는 도움을 주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전력의 안정성을 위해 당분간 불가피한 가스 등의 화석연료를 앞으로 어떻게 줄여갈 계획이냐는 질문에는 "2045년 미래 전력시스템을 상정한 시나리오에서 핵심은 수소, 특히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으로 수전해를 돌려 만든 수소(그린수소)"라 했다. 그는 "지금 독일에서는 수소 전환이 가능한 가스 발전소를 짓고 있다"며 "5~10년 후에는 이 발전소들을 가스가 아니라 수소로 전환할 수 있게 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TSO(Transmission System Operator·송전망 운영자): 한국은 한국전력이 송전·배전망을 모두 운영하지만, 독일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발전·송전·배전을 분리해 운영하며, 이 중 송전 기능만 담당하는 회사를 TSO라 한다. 독일에는 4개의 TSO가 있고, 각자의 지역 단위에서 독점적 송전사업자 역할을 한다. 암프리온을 포함한 대부분의 TSO는 민영 기업이다.
*한독 에너지데이:'한-독 에너지데이'는 2018년부터 시작된 한-독 에너지파트너십의 주요 연례 행사다. 2020년부터는 한-독 에너지파트너십 하에서 독일연방경제에너지부와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올해부터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매년 양국에서 교차 개최하고 있다. 한독상공회의소·독일 싱크탱크 아델피가 한-독 에너지파트너십의 한국 측 사무국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