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소 탈탄소에 3조 지원한 네덜란드..삼성·SK 반도체 협업 주목

권다희 기자
2026.02.06 05:50

[2026 지속가능한 미래, 길을 묻다]<4>페이터 반 더 플리트 주한네덜란드대사

[편집자주] 에너지와 산업에서의 탄소배출 저감, 이른바 녹색전환은 시장 압력에 따른 공급망 탈탄소와 에너지안보 강화란 동력이 더해지면서 점점 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주목받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관련 인터뷰를 통해 지속가능한 녹색전환과 성장을 이루기 위한 길을 모색해본다. 첫 순서로 녹색전환에 앞선 국가들의 주한대사들을 통해 국제사회의 시각을 들여다보고 우리나라의 잠재력도 짚어본다.
페터르 반 데르 플리트 주한네덜란드 대사 인터뷰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오늘날 글로벌 시장에서 탈탄소화는 점점 더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탈탄소 전환이 초기에는 비용을 수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익을 가져옵니다. "

페이터 반 더 플리트 주한네덜란드대사가 전한 네덜란드 산업계의 탈탄소화 흐름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었다. 정책 설계와 재정 지원, 기술 투자, 눈에 보이는 산업 현장의 변화까지 이어지는 일관되고 치밀한 전략이 뒷받침 된 것이다. 반 더 플리트 대사는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주한네덜란드대사관에서 가진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은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라며 네덜란드 산업 전반에 깔린 탈탄소 비전의 핵심을 설명했다.

네덜란드 이산화탄소 배출량/그래픽=김다나
네덜란드 정부, 역내 제철소에 저탄소에 20억 유로 지원

그가 꼽은 첫 번째 성공 요인은 기후 정책과 혁신을 결합한 통합 전략이다. 네덜란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55% 감축한다는 기후법상 목표를 분명히 설정했다. 동시에 이를 규제가 아닌 혁신을 촉진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탄소가격제 등을 설계할 때 보조금 등의 지원과 규제의 균형을 맞췄다. 기업이 기술투자로 방향을 틀 수 있도록 정책의 예측가능성을 높인게 핵심이다.

두 번째 축은 청정에너지와 산업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다. 네덜란드 정부의 접근법은 중공업을 저탄소 공정으로 전환하도록 돕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해말 철강기업 타타스틸의 네덜란드 내 생산시설을 저탄소화하는데 정부가 최대 20억 유로(약 3조4000억원)를 지원하기로 한 결정이 대표적이다. 궁극적으로 수소기반 공정으로 바꾸는게 목표다. 이에 대해 반 더 플리트 대사는 "네덜란드 내 해당지역에서 경쟁력 있고 지속가능한 미래형 철강 산업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력부문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눈에 띈다. 네덜란드는 풍력과 태양광에서 빠른 속도로 설비를 늘려왔다. 2023년 기준 태양광의 1인당 발전량은 1200킬로와트아(kWh)로 유럽연합(EU) 평균의 약 2배, 풍력은 1644킬로와트시로 EU 평균보다 60% 이상 많다. 청정 전력 확대는 전력 부문 배출량을 32% 줄이는데 기여했다. 해상풍력도 북해 석유·가스 개발로 축적된 해양 인프라·설치·계통 연계 경험을 바탕으로 설치 비용을 낮추고 설비 확대 속도를 끌어올렸다.

네덜란드 재생에너지 발전량/그래픽=김다나

ASML 등 반도체 기업들 "탄소저감 부가가치 제고 기회로"

네덜란드가 강점을 갖고 있는 반도체 산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반도체 장비 기업 ASML과 ASM, 비메모리 반도체 기업 NXP 등 네덜란드 기업들은 이미 에너지 효율적인 장비 설계, 순환형 제품구조, 자원사용 최소화를 핵심 경쟁요소로 내세우고 있다. 반 더 플리트 대사는 "반도체 장비 산업에서도 고객사들이 에너지와 물 사용 감축을 업체에 요구하고 있다"고 전한 뒤 "해외 고객사들도 탄소발자국이 더 작은 제품을 선호한다"면서 "ASML 등 네덜란드 기업들은 이를 위협이 아니라 부가가치를 높이는 기회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반도체를 포함한 산업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발견되는 변화 중 하나가 ATES(대수층 열에너지 저장) 시스템 도입이다. 땅속 깊은 곳에 비가 스며들어 형성된 물층(지하 대수층)에 여름의 열과 겨울의 냉기를 저장했다 난방과 냉방에 활용하는 것으로 히트펌프와 결합해 가스 보일러를 대체한다. 에너지사용과 탄소배출을 동시에 줄이는 이 시스템은 네덜란드 산업현장을 포함해 건물 전반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산업 전환의 성과는 더 큰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네덜란드는 1990년 이후 국내총생산(GDP) 단위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약 65% 줄였다. 같은 기간 1인당 GDP는 60% 이상 늘었다. 반 더 플리트 대사는 "효율성 개선과 청정에너지 전환을 기반으로 경제 성장과 배출 감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소개했다.

페터르 반 데르 플리트 주한네덜란드 대사 인터뷰 /사진=김창현 기자 chmt@
"한국과 에너지 덜 쓰는 반도체 공정 연구 협력"

지속가능성을 강화하기 위한 한국과의 협업 역시 진행 중이다. 우선 ASML이 경기 화성 캠퍼스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협력해 첨단 노광 장비의 재사용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웨이퍼당 에너지 사용량을 낮추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반 더 플리트 대사는 "네덜란드는 반도체 장비와 기술을 공급하고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서 글로벌 리더라는 상호보완 관계를 갖고 있다"며 "공급망 탄소 감축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에너지 효율적인 반도체에 대한 공동 연구개발이 협력 분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부임했을 때 네덜란드와 한국이 얼마나 비슷한지가 인상 깊었다"며 "양국 모두 개방적이고 수출지향적인 첨단기술 기반 경제이며 무역과 투자가 부와 복지의 중요한 기반이란 점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할 탄탄한 토대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약력

△2023년-현재, 주한네덜란드대사 △2019-2023년 주일네덜란드대사 △2015-2019년 네덜란드 외교부 다자기구 인권국장, 지속가능발전목표 대사 △2011-2015년 주유엔네덜란드대표부 차석대사 △1990년 네덜란드외교부 입부 △에라스무스대학 정치외교학과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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