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텔·상가·지식산업센터 등 분양 현장에서는 익숙한 장면이 있다. 시행사는 금융기관과 사전에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수분양자에게 특정 금융기관을 안내한다. "중도금은 지정 은행에서 바로 대출이 가능하다"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수분양자는 시행사의 안내에 따라 대출을 실행하고, 그 자금은 곧바로 시행사로 지급된다. 겉으로 보면 수분양자와 금융기관 사이의 대출계약일 뿐이지만, 실질 구조는 시행사 금융기관 수분양자가 긴밀히 연결된 삼각 구조다.
문제는 분양계약이 취소되거나 무효가 되었을 때 발생한다. 허위·과장 광고, 중요 사항에 대한 기망, 인허가 문제, 사업 좌초 등으로 분양계약이 해제·취소되거나 원시적 무효로 판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때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질문은 이것이다. "분양계약이 사라졌다면, 중도금 대출 채무는 누가 부담하는가?"
금융기관의 기본 입장은 단순하다. 대출계약은 수분양자와 은행 사이의 별도 계약이므로, 분양계약의 효력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출 약정서에는 대출금 상환 의무가 분양계약의 존속 여부와 무관하다는 취지의 조항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형식적으로 보면 이는 타당해 보인다.
문제는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 구조다. 이 중도금 대출은 수분양자가 자율적으로 선택한 일반 신용대출과는 성격이 다르다. 대출 실행은 분양계약 체결을 전제로 하고, 자금은 수분양자의 계좌에 머무르지 않고 곧바로 시행사로 지급된다. 대출 실행의 전제가 되는 경제적 목적은 오직 분양계약의 이행이다. 분양계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실행될 이유가 없는 대출이다.
금융 알선 구조와 '제3자를 위한 계약'의 문제
민법상 제3자를 위한 계약은 당사자 일방이 제3자에게 급부를 하기로 약정하는 계약 형태를 말한다. 시행사와 금융기관이 사전에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그 결과로 수분양자가 대출을 통해 시행사에 직접 자금을 지급하는 구조라면, 단순한 독립 계약이 아니라 분양계약을 중심으로 결합된 복합 계약 구조로 볼 여지가 생긴다.
특히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다면 논점은 더 분명해진다. ① 금융기관이 사실상 해당 사업 전용 대출상품을 운용한 경우, ② 대출 실행이 분양계약 체결을 전제로 자동화된 구조인 경우, ③ 자금이 수분양자에게 실질적으로 처분 가능하게 지급되지 않고 시행사로 직행한 경우, ④ 분양계약 체결과 대출 실행이 사실상 하나의 패키지처럼 안내·운영된 경우, 이 경우 대출계약은 분양계약과 완전히 독립된 계약이라고 보기 어렵다. 분양계약이 무효·취소로 소급 소멸한다면, 그 계약을 전제로 체결된 대출 역시 법률상 원인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물론 법원이 언제나 수분양자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판례는 대출계약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경향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 분쟁에서 핵심은 "독립 계약인가"라는 형식 논쟁이 아니라, 이 거래 구조에서 누가 실질적 이익을 취했고, 누가 위험을 통제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도금 대출 구조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주체는 시행사다. 자금은 시행사로 귀속되고, 사업 진행의 원동력이 된다. 금융기관 역시 안정적인 담보와 집단 대출 구조를 통해 위험을 관리한다. 반면 수분양자는 계약이 무효가 되면 분양권도 잃고, 잔존 대출 채무만 남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구조적으로 가장 약한 위치에 있는 당사자에게 위험이 집중되는 셈이다. 이러한 구조가 반복되면 시장의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수분양자는 분양계약의 효력뿐 아니라 금융 구조까지 감당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고, 사업 실패의 위험은 개인에게 전가된다. 이는 단순한 사적 분쟁을 넘어, 분양 시장 전체의 건전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결국 이 문제는 단순히 "누가 계약 당사자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분양계약과 대출계약이 결합된 구조에서 위험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다. 분양계약이 무효가 되었음에도 대출 채무만 남는 구조가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법리적 검토와 함께 정책적 고민도 필요하다. 분양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주거와 생업, 삶의 기반이 걸린 결정이다. 그 결정이 무효로 돌아갔을 때 모든 금융 위험을 개인에게만 지우는 구조가 과연 공정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거래의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위험이 어떻게 배분되었는가이며, 그 구조가 공정한지에 대한 질문도 피할 수 없다./글 법무법인 차율 이경호 대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