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만든 전기 버려야" 이런 일 없게...한낮 태양, 이렇게 모아둔다

권다희 기자, 제주=임찬영 기자
2026.03.18 07:30

[스마트에너지리포트]전력 패러다임 바꾸는 분산에너지 (中)

[편집자주] 기후변화 대응를 비롯해 에너지안보와 인공지능(AI) 고도화 등 다양한 변수가 에너지 생산·이용·소비의 모든 과정을 급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이같은 변화가 지속가능하게 이뤄지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다양한 주제를 통해 제시해본다.

버려지는 태양광 줄이는 유연성 자원은..전력망 진화 가속화

한국동서발전·에퀴스 등의 컨소시엄이 참여한 제주 북촌 BESS의 외관. 2023년 입찰에 낙찰 돼 2026년 1월 준공됐다./사진=권다희 기자

제주에서 실증 중인 전기차-전력망 연계(V2G)는 태양광·풍력 등 분산된 소규모 전원이 늘어나면서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활용되는 '유연성 자원'의 한 종류다. 유연성 자원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발생하는 출력제어를 줄이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20%에 달하는 제주와 태양광 발전시설이 밀집한 호남에서 유연성 자원 확대가 추진되는 이유다.

전력 사용을 조절하는 '수요 유연성' 자원 사례/그래픽=이지혜

◇태양광 발전 간헐성 보완하는 유연성 자원

출력제어는 전력 수요보다 발전량이 많아질 때 전력망에 과도한 전기가 흘러 장비 고장이나 정전이 발생하지 않도록 발전량을 강제로 줄이는 조치를 말한다. 태양광은 햇빛이 강한 낮 시간대에 발전이 집중되는 특성이 있어 전력이 남는 시간이 발생하기 쉽다. 이때 전력망이 이를 모두 받아들이지 못하면 생산된 전기의 일부를 버려야 한다. 발전사업자에게는 손실이 되고, 전력망 운영 측면에서도 비효율이 발생한다.

흔히 재생에너지가 많은 지역의 계통이 '포화됐다'고 표현하지만, 유연성 자원을 적절히 활용하면 대규모 송전망을 추가로 건설하지 않고도 계통 혼잡을 일정 부분 완화할 수 있다. 김건호 전력연구원 배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실제 전력망 운영을 보면 하루 중 일부 시간대에만 전력 사용이 일시적으로 크게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며 "그 짧은 시간의 수요 증가 때문에 새로운 선로나 설비를 건설해야 하는데 유연성 자원을 활용하면 추가 투자 없이도 기존 전력망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유연성 자원으로는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와 양수발전이 꼽힌다. 다만 양수발전은 대규모 시설 건설이 필요하고 사업 기간도 길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BESS를 중심으로 계통 유연성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 양수발전과 병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23년 제주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중앙계약 방식 경쟁입찰을 도입해 계통 연계형 BESS 보급을 확대하고 있는 배경이다.

이 입찰제도는 대규모 BESS 사업자를 경쟁입찰로 선정해 약 15년간 수익을 정산해 주는 구조를 갖고 있다. BESS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방전하는 기능뿐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출력(전력량)을 늘리거나 줄여 전력망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도 한다. 낮에 남는 태양광 전력을 저장했다 저녁처럼 전력 수요가 많은 시간대에 공급할 수 있도록 약 6시간 동안 긴 시간 전력을 방출할 수 있는 BESS가 주요 입찰 대상이다.

수요 유연성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그래픽=이지혜

◇수요측 유연성도 중요..기술 가능한데 제도적 제약

저장 장치만이 유연성 자원은 아니다. 수요반응(DR)과 V2G와 같이 전력 소비를 조정해 계통 균형을 맞추는 수요측 유연성 자원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수요반응은 전력 공급이 부족하거나 수요가 급증할 때 사전에 약정한 기업이나 일부 가정이 전력 사용을 줄이고 그 대가를 받는 제도다. 한국에서는 2014년 수요자원거래시장이 도입됐고, 그리드위즈와 같은 기업들이 이 시장에서 사업을 확대해왔다.

전력시장이 개방된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러한 유연성 자원이 한국보다 먼저, 더 활발하게 도입·상용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V2G 서비스가 일부 전기요금제와 연계된 형태로 등장해 시범사업과 상용사업이 함께 진행되고 있으며, DR 역시 개인 고객까지 참여 범위가 확대됐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전력 소매 판매와 송·배전 사업을 사실상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구조라 민간 기업이 관련 기술을 상용 서비스로 확대하기 어렵다는게 업계의 지적이다. 한 관계자는 "기술적으로는 이미 구현이 가능하지만 법과 제도적 근거 없이 상용 서비스를 만들기는 어렵다"며 "DR이나 V2G 기술은 대규모 송·배전 설비를 새로 구축하지 않고도 전력망 유연성을 높일 수 있는 선택지인 만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골집 태양광 묶어 관리한다고?..흩어진 발전소 시대

호남지역 태양광 발전 현황/그래픽=김지영

전력시장 운영 방식도 재생에너지 확대에 맞춰 하나둘씩 바뀌고 있다. 이번 달 호남권에서 시작된 재생에너지 준중앙 급전운영제도(이하 준중앙급전제)가 대표적이다. 전력거래소가 태양광·풍력 발전소, 가상발전소(VPP) 자원을 묶어 전력망 상황에 맞춰 발전량 조정을 요청하면 이에 참여하고 그 대가로 보상을 받는 제도다.

◇재생에너지, 전력망 운영 주변서 중심으로 한발 더

준중앙급전제는 재생에너지를 단순히 전기를 생산하는 설비가 아니라 전력망 운영에도 참여하는 설비로 바꾸는 장치라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에는 태양광·풍력이 발전하면 전력망이 이를 최대한 받아주는 방식에 가까웠다면 앞으로는 전력거래소의 신호에 따라 발전량을 조정하고 그 대가를 받는 방식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특히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호남 지역에서는 낮 시간대 태양광 발전이 집중되면서 전력 수요보다 발전량이 많아지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이런 경우 발전량을 강제로 줄이는 출력제어(전력망 안정을 위해 발전량을 제한하는 조치)가 불가피하다. 준중앙급전제는 발전량 예측과 출력 조정이 가능한 자원을 선별해 전력망 운영에 편입함으로써 이같은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이는 재생에너지가 전력망에서 갖는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거 재생에너지가 전력망 운영에서 사실상 '수동적 자원'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전력망 상황에 맞춰 발전량을 조정하며 운영에 참여하는 '능동적 자원'으로 역할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전력망 운영은 LNG(액화천연가스)·석탄 등 전력거래소가 발전량을 직접 조정할 수 있는 '급전 발전기' 중심으로 이뤄져왔다. 재생에너지도 완전한 급전 대상 설비는 아니지만 점차 이에 준하는 방식으로 전력망 운영에 참여하게 된다는 얘기다.

재생에너지 준중앙 급전운영 제도란/그래픽=이지혜

◇가상발전소 사업자 역할도 확대

제도 운영 과정에서 VPP 사업자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 VPP 사업자는 여러 지역에 흩어진 소규모 태양광·풍력 발전소를 하나의 발전기처럼 묶어 전력시장에 참여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개별 설비 규모가 작은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직접 시장에 참여하기 어려운 만큼 VPP 사업자가 사실상 재생에너지의 '시장 참여 창구' 역할을 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발전량을 얼마나 정확히 예측하고 얼마나 빠르게 조정할 수 있는지가 VPP 사업자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제주에서는 이보다 한단계 진전된 재생에너지 실시간 입찰 시장이 2024년부터 시범 운영되고 있다. 준중앙급전제를 거쳐 이런 시장 구조가 전국으로 확대될 경우 VPP 시장 역시 더욱 커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준중앙급전제에 참여하는 기업 '해줌'의 노서영 VPP 본부장은 "기존 전력시장이 대형 중앙급전 발전기 중심으로 설계됐다면 앞으로는 수많은 분산자원과 이를 묶는 VPP 사업자에 맞는 운영 체계가 필요하다"며 "전력거래소와 한국전력, 사업자간 소통 구조와 보상 체계를 함께 정비해야 재생에너지 확대와 계통 안정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양광 발전소 20만개 시대…전력망 '현재형 해법' 가상발전소

전국 태양광 발전 지역별 현황/그래픽=김지영

전력망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석탄·가스 같은 대형 발전소 몇 곳에서 만든 전기를 송전망을 통해 보내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전국 곳곳의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저장장치(ESS)까지 전력망에 연결되는 시대가 됐다. 전기를 만드는 설비가 커다란 발전소 몇 개에서 수많은 소규모 자원으로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분산화와 간헐성, 전력 시스템 새로운 과제

동시에 재생에너지 확대는 전력망에 새로운 과제를 던졌다. 태양광은 구름이 끼면 발전량이 갑자기 줄고, 햇빛이 강하면 한꺼번에 발전이 몰린다. 풍력도 바람이 불어야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예전에는 이런 특성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미 제주에서는 발전량 기준 재생에너지 비중이 20%를 넘었고, 이 비중은 수년 내 전국에서 확대될 전망이다.

이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개념이 가상발전소(VPP·Virtual Power Plant)다.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소규모 태양광·풍력 발전소나 전기차, ESS 같은 자원을 하나로 묶어 마치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는 방식이다. 전력거래소나 전력망 운영자가 수십만 개의 작은 자원을 일일이 관리하기 어려운 만큼, 이를 대신 모아 연결하고 조정하는 중간 플랫폼이 필요해졌고 그 역할을 VPP가 맡는다.

VPP는 2024년 제주에서 재생에너지 실시간 입찰 시장이 도입된 데 이어 이번 달 호남 지역에 준중앙급전 제도가 시행되면서 전력 시스템에서 역할을 키우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지난 10일 준중앙급전 참여 물량 470메가와트(MW) 가운데 233MW 규모로 가장 많은 자원을 확보한 해줌의 노서영 VPP 본부장을 만나 분산에너지 확대 속에서 달라지고 있는 전력 시스템과 VPP의 역할에 대해 들었다.

제주 vs 전국 재생에너지 비중 예상치 비교/그래픽=최헌정

◇소규모 태양광 자원 묶어 알고리즘으로 관리하는 가상발전소

노서영 본부장은 "전기는 모든 순간에 수요와 공급이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며 "재생에너지가 늘어날수록 발전량 변동성이 커지기 때문에 이를 예측하고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전력망에서는 공급이 넘쳐도 문제고 부족해도 문제"라며 단순히 재생에너지가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냐는 단순한 공식만으로는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VPP는 이런 다양한 자원을 한데 모아 실제 전력시장과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노 본부장은 "전국에 태양광 발전소가 약 20만개, 설비용량으로는 약 30GW에 이르는데, 이 중 거의 대부분이 1MW 이하 소규모 설비"라며 "전력거래소가 이 수많은 발전소를 하나하나 직접 관리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VPP 사업자는 이런 자원들을 모집해 권역별로 묶고, 발전량을 예측해 계획을 제출하고, 필요할 때는 출력을 조정한다"며 "쉽게 말해 흩어져 있는 발전소들을 모아 하나의 가상발전소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서영 해줌 VPP 본부장/사진=권다희 기자

◇"재생에너지, 비중 커지며 전력망 운영 책임도 늘어"

이런 역할은 최근 시작된 재생에너지 준중앙급전 제도에서 더 분명해졌다. 준중앙급전은 재생에너지를 단순히 전기만 생산하는 설비가 아니라, 전력망 상황에 따라 출력을 조절하는 자원으로 편입하는 제도다. 호남처럼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 발전량 예측과 출력제어가 가능한 자원을 골라 전력망 운영에 참여시키는 방식이다.

재생에너지 정책이 처음에는 발전량을 예측하는 단계에서 시작해, 이후에는 예측과 제어, 나아가 예측·제어·입찰까지 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에서 운영 중인 재생에너지 실시간시장이 최종 단계에 가깝다면, 호남 준중앙급전은 그 직전 단계인 '예측하고 제어하는 능력'을 먼저 요구하는 과도기적 제도인 셈이다.

과거 태양광 발전사업은 좋은 입지를 확보하고 설비 원가를 낮춰 오랫동안 안정적 수익을 얻는 구조에 가까웠으나 이제는 발전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발전량을 얼마나 잘 예측하고 얼마나 빠르게 제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노 본부장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게는 새로운 수익 기회가 생기는 동시에 계통 운영에 협조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도 함께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가상발전소, '지금' 전력망 효율 높일 수 있는 수단"

특히 송전망 부족 문제가 심각한 구조에서 VPP의 역할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호남에는 전국 태양광 설비의 약 40%가 몰려 있지만, 전력 수요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송전망 확충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노 본부장은 "송전망이나 초고압직류송전(HVDC) 같은 대형 인프라는 장기간에 걸쳐 추진해야 하는 과제"라며 "그 사이 지금 당장 재생에너지의 이용 효율과 수용성을 높이는 현실적 수단으로 VPP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VPP가 전력망과 분산자원을 이어주는 플랫폼이자 생산과 소비를 더 잘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려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노 본부장은 "사업자 입장에서는 수익성 보다 제도가 언제 도입되고 어떤 기술 요건이 필요하며 정산 구조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더 큰 리스크"라 했다. 그는 "기존 전력시장은 대형 중앙급전 발전기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었지만 VPP는 수많은 소규모 자원과 중개사업자가 함께 움직이는 구조"라며 "전력거래소와 한전, 사업자 사이에 VPP 사업 특성에 맞는 운영 체계와 소통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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