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형숙박시설(이하 '생숙') 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법원 2025다217022 판결은 분양계약에서 '주거 가능성에 대한 착오'를 이유로 한 계약 취소를 쉽게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건은 서초구 소재 생숙 분양계약이다. 시행사는 분양 당시 "실거주도 가능하다"는 취지로 홍보를 진행하였고, 당시에는 실제로 주거용으로 사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건축법 시행령 개정으로 생숙의 주거 사용은 명확히 금지되었고, 계약 이전부터 규제 강화가 예고되어 있었던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수분양자들은 실거주가 가능하다고 믿고 계약을 체결하였다며 착오를 이유로 계약 취소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숙은 본질적으로 숙박시설에 해당하고, 당시 홍보자료에는 법적 용도가 명시되어 있었으며, 수분양자 역시 이를 인지한다는 확인서를 작성한 이상 주거 가능성을 전제로 한 착오나 시행사의 유발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홍보를 믿었다'는 사정만으로는 계약 취소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문제는 이 판결이 전제하고 있는 현실 인식이다. 법원은 분양주체와 수분양자를 대등한 정보와 판단 능력을 가진 당사자로 전제하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 분양시장은 그렇지 않다. 실물 부동산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계약이 이루어지고(소위 '선분양'), 홍보관에서는 강한 계약 유도가 이루어지며, 계약서는 형식적으로 체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조에서 수분양자의 의사결정은 계약서가 아니라 홍보와 설명에 의해 형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서 기재만을 기준으로 책임을 판단하는 것은 분양시장 현실을 충분히 반영한 접근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책임의 배분 구조다. 이번 판결은 결국 "불법적인 전제에 기초한 신뢰는 보호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러나 그 신뢰가 과연 누구에 의해 형성되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과대·허위 광고를 통해 신뢰를 형성한 시행자는 실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고, 이를 믿은 수분양자만 법적 책임을 부담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판결 이후 실무적으로는 단순히 '착오'를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분양 과정에서의 구체적인 기망행위나 설명의무 위반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결국 분쟁의 초점은 계약서 문구가 아니라 계약 체결 과정 전체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분양계약의 본질은 계약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계약을 믿게 만든 과정에 있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은 그 과정에 대한 고려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이 판결이 남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분양시장에서 형성되는 '신뢰'의 책임은 전부 소비자의 책임인가. /글 법무법인 차율 이수희 대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