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34세, 통장 잔액 80만 원. 이걸로 창업했다.
창업 전 김태은 대표는 정책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아버지를 여읜 뒤 전일제 학생을 포기하고 취직한 상태였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활동과 창업 기관 자문, 정책 평가, 강의 등을 병행하고 있을 무렵.
불현듯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직장인으로 살 것인가. 사업가로 살 것인가.'
양 팔꿈치를 책상에 얹었다. 손으론 이마를 지탱하고 눈을 감았다. 오전 내내 그렇게 있었다. 나중에 덜 후회할 쪽을 택하기로 했다. 어차피 통장은 비었다.
'망해도 마흔 전에 망해야겠다.'
그래서 차린 것이 지식 서비스 회사 '태은랩앤코'다. 혼잣손 영업은 애가 말랐다. 바짓가랑이 잡으며 매달리다시피 했다. 소위 갑을 관계의 '을'보다 더한 '병'이나 '정'쯤 되는 포지션의 협업을 따냈다. 외주 비용으로 받은 돈은 다직해야 수십만 원. 그렇게 버티며 레퍼런스를 쌓았다.
그리고 몇 해 뒤 태은랩앤코에서 창업 교육 및 멘토링 기능을 분리, 협소 인공지능(Narrow AI) 기반 창업 솔루션 기업 더필드플레이어를 다시 창업했다. 직원들이 들어오면서 이른바 '헬게이트'가 열렸다. 직장인 시절 인정받던 인격적 속성(좋은 상사 등)은 '사장'이란 직함 앞에선 통하지 않았다. 숫자로 증명해야 했다. 사로잠을 자며 영업에만 골몰했다.
가장 힘든 시기가 언제였냐는 물음에 김 대표는 "지금"이라며 "바닥이 딱딱할 것을 알면서도 들이받아야 하는 시기"라고 했다. '제안·거절, 제안·거절' 무한 반복이다. 그래서 그가 늘 붙드는 것이 '평정심'이다.
그는 "동료들과 일하는 게 즐겁고 계획적인 삶이 좋다면 창업을 권하지 않는다"면서 "고독과 분노, 열등감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사람이라면 가볼 만한 길"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정부지원 사업은 게임으로 치면 트레일러 혹은 맛보기 데모버전"이라며 "진짜 창업은 고정비 압박이 커지는데 밀고 나가야 하는, 그러면서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그의 일상이 매우 심플해졌다고 한다. 집·회사·영업, 이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