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HBM(고대역폭메모리) 핵심 생산 거점인 충남 천안사업장을 찾아 생산라인을 점검했다.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HBM4 양산·출하와 HBM4E 샘플 공급에 성공하며 AI(인공지능) 메모리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생산 경쟁력과 공급 대응 체계를 점검하기 위한 현장 경영에 나선 것이다. 올해 HBM4는 연간 매출 100억 달러를 달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천안사업장 C1·C2 라인을 방문해 사업장 운영 현황과 생산 계획, 기술 개발 진행 상황 등을 보고받았다. 천안사업장은 HBM 후공정과 첨단 패키징을 담당하는 핵심 생산 거점이다. 이 회장은 방진복을 착용한 채 HBM 패키지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생산성과 품질 경쟁력 현황을 점검했다.
이번 방문은 삼성전자가 차세대 HBM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해 가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업계 최초로 HBM4 샘플을 양산·출하한 데 이어 4개월 만에 매출 10억 달러(약 1조5380억원)를 달성했다. 이달 말 기준 누적 매출은 12억 달러(약 1조8456억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신규 메모리 제품의 첫해 매출로는 이례적인 규모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HBM4 연간 매출이 1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HBM4에 1c(10나노급 6세대) D램 공정과 자사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에서 생산한 4나노(nm·1nm=10억분의 1m) 베이스다이를 적용했다. 단일 스택 기준 총 메모리 대역폭은 HBM3E 대비 약 2.7배 향상된 최대 3.3TB/s(초당 테라바이트) 수준으로 고객사 요구 수준(3.0TB/s)을 웃도는 성능을 확보했다. 데이터 처리 속도는 최대 13Gbps(초당 기가비트)를 구현했다. 전력 효율도 전 세대 대비 약 40% 개선됐다.
HBM4 성장의 배경에는 AI(인공지능) 투자 확대에 따른 수요 급증이 있다. 올해 HBM 시장 규모는 지난해 대비 58% 증가한 546억 달러(약 84조원)로 전망된다. 특히 GPU(그래픽처리장치)뿐 아니라 ASIC(주문형 반도체) 수요 증가가 HBM 시장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주요 GPU 업체와 ASIC 기반 하이퍼스케일러 고객사의 HBM4 공급 협력 요청이 삼성전자에 끊이지 않고 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AI 시장에서 ASIC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삼성전자의 HBM 고객 기반이 확대될 것"이라며 "올해 삼성전자 HBM 출하량은 전년 대비 200% 이상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올해 HBM4는 삼성전자 전체 HBM 매출의 과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HBM4 매출은 올해 3분기부터 전체 HBM 매출의 절반을 넘어설 것"이라며 "연간 기준으로도 HBM 매출의 과반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고부가가치 제품인 HBM4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HBM 매출 성장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HBM4는 파운드리 사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4나노 베이스다이를 삼성 파운드리가 생산하는 만큼 HBM4 출하가 늘어날수록 파운드리 가동률도 함께 높아지는 구조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파운드리, 로직, 패키징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의 시너지를 활용해 차세대 HBM 시장 주도권 확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지난달에는 업계 최초로 차세대 제품인 HBM4E 12단 샘플을 고객사에 출하했다.
업계 관계자는 "HBM4, HBM5 등 HBM이 고도화될수록 베이스다이의 로직 비중이 커지는 만큼 자체 파운드리 공정과 HBM 설계를 함께 최적화하는 삼성전자의 차별화된 역량이 강력한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