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이 한 발 치고 나간 글로벌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시장에서 한국이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탄탄한 제조 기술을 기반으로 국내 주요 그룹이 대규모 투자에 나서며 최근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보완하고 각종 규제를 적극적으로 풀어간다면 반도체에 버금가는 수출 사업으로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에서 로봇 산업이 중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대내적으로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 노동력 부족을 보완할 '대체 근로자'가 필요하다. 대외적으로는 반도체·자동차·조선 등을 이을 '새로운 수출 산업' 발굴이 시급하다.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로봇 산업 육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된 셈이다.
로봇 산업의 미래를 보고 많은 기업이 이 분야에 진출했다. 산업통상부의 '로봇 산업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로봇 산업 관련 기업은 2509개에 달했다. 이들 기업을 세부적으로 구분하면 '로봇 부품 및 소프트웨어'가 1413개로 56.3%, '제조업용 로봇'이 564개로 22.5%를 차지한다. 같은 해 로봇 기업의 매출은 전년(5조9805억원) 대비 3.2% 증가한 총 6조1695억원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국내 로봇 산업은 꾸준히 성장했지만 노동력 대체 수단으로서 가장 의미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발전 속도는 기대에 못 미쳤다. 한국은 2004년 국내 최초의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HUBO)'를 개발했고, 이 로봇 업그레이드 모델이 2015년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개최한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한국은 이후엔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는데 이를 두고 한국수출입은행은 '이슈보고서'에서 경쟁의 패러다임이 AI(인공지능), 양산 경쟁력, 가격 등으로 이동하면서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진 것으로 분석했다.
수출입은행은 특히 "하이엔드 휴머노이드 로봇은 미국이 AI(인공지능)·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융합 등에서 압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미국의 기술력이 100일 때 한국의 기술력은 85~90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급형 휴머노이드 로봇은 선도국인 중국의 기술 수준이 100일 때 한국은 90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들어 AI 기술의 빠른 발전과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제조업 경쟁력, 주요 그룹의 대규모 투자가 맞물리며 한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이 세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의 발전이 국내 기업에 강점이 있는 반도체·배터리 수요를 크게 촉진할 것이라는 전망에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더해지며 시장의 기대는 한층 커졌다.
국내 기업 중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성과가 눈에 띈다. 올해 1월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 전시회 'CES 2026'에서 자회사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선보이며 글로벌 시선을 사로잡았다. 대중이 모이는 공개 행사에서 직접 시연을 했다는 것 자체가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을 증명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무엇보다 관련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밝힌 2028년 아틀라스의 미국 공장 배치 및 연간 3만대 규모 생산 설비 구축 계획에 한 번 더 놀라기도 했다. 기술 과시용이 아닌 실제 활용을 염두에 둔 휴머노이드 로봇의 탄생이 임박했음을 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이후에도 아틀라스의 '성장기'를 꾸준히 공개하고 있다. 지난 5월 선보인 영상에서 아틀라스는 23㎏의 냉장고를 들고 안정적으로 이동하며 강화학습, 전신 제어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여줬다. 이후 북중미 월드컵을 기념해 아틀라스가 축구 기초 동작 훈련을 거쳐 고난도 킥(kick)까지 성공시키는 영상을 공개하며 재차 역량을 과시했다. 현대차그룹은 연내 일본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보스턴다이나믹스 지분 약 9.65%를 사들여 100% 자회사로 만들고, 이후 나스닥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다른 주요 그룹도 로봇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4년 말 로봇 전문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하며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 추진을 본격화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휴보'를 개발한 카이스트 휴보 랩(Lab) 연구진이 2011년 설립한 기업이다. 꾸준히 가정용 로봇 등을 선보여온 LG전자는 휴머노이드 로봇 지능 고도화를 위한 '로봇 데이터 팩토리'를 구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 간 만남이 성사되면서 양사 간 '로봇 동맹' 기대도 높아졌다. 두산로보틱스는 산업용 로봇을 넘어 휴머노이드와 AI 기반 로봇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규모 자금력'과 '폭넓은 제조 생태계'를 갖춘 국내 주요 대기업이 일제히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로봇 산업 전망은 긍정적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은 단기간 내 수익 창출을 기대하기 어려워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고, 각종 부품을 원활하게 수급·조합할 수 있는 제조 경쟁력이 수반돼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업계 공통 분석이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휴머노이드 로봇을 자체 자동차 제조 공장에 투입해 성능을 검증·개선하고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취약한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해결 과제로 꼽힌다. 엔비디아·구글 등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체 소프트웨어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책 과제로는 국내 로봇 기업의 98%(2024년 기준 2458개)에 달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자금 지원, 도전과 혁신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 철폐 등이 거론된다. 나아가 휴머노이드 로봇을 현장에 원활하게 투입할 수 있도록 실증사업 발굴, 안전 기준 마련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일자리 충격'을 우려하는 근로자들과 원만한 협상도 선결 과제다. 수출입은행은 핵심 부품 자립화, 공급망 강화, 협력적 생태계 구축 등을 과제로 제시하며 "휴머노이드 로봇은 상용화 초기 단계에 있어 한국 기업에도 기회가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