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일본 아이치현 스카이엑스포에서 열린 '로봇 테크놀로지 재팬 2026'. 전시장 한 부스에 모인 수백명의 관람객의 눈은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의 손 끝을 응시했다. 토요타가 개발한 AI(인공지능) 농구 로봇 '큐'(CUE)의 최신 모델 '큐7'이 자유투 성공에 이어 3점슛을 시도하는 순간이었다. 슛을 넣자 장내에서는 탄성과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이후 열린 시연에서는 3점슛이 두 번 연속으로 빗나가기도 했다. 실패 직후 로봇이 손을 눈가로 가져가 눈물 닦는 시늉을 하자 장내에 웃음이 번졌다.
2022년 첫 개최 이래 산업용 로봇을 주로 다뤄온 이 행사에서 올해 처음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이 전시됐다. 피지컬 AI를 향한 시대 변화에 화답한 셈이다. 행사가 열린 아이치현은 글로벌 1위 자동차 기업 토요타 본사가 위치한 일본 제조업의 중심지다. 토요타는 모빌리티(이동성) 기업으로의 변모를 꾀하면서 그룹 내 프론티어 연구소를 두고 로봇 기술 개발까지 역량을 확장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츠지모토 타카요시 토요타 프론티어 연구소 R-프론티어부 애슬레틱 인텔리전스 그룹 매니저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시연하면서 일본도 이 산업에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며 "토요타는 자동차 제조로 유명한 기업이지만 기업 내에 연구센터를 두고 로봇을 사회에 실용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아직은 회사에서 전력을 쏟는 분야는 아니지만 로봇 시대에 대처하는 방향으로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장을 찾은 관람객들의 시선은 화려한 퍼포먼스에만 머물지 않았다. 바로 옆 부스에서는 가와다 로보틱스의 양팔 휴머노이드 '넥스테이지'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컨베이어 위 물건을 집어 상자에 담고, 뚜껑을 닫은 뒤 도장까지 찍어 건네는 일련의 작업을 쉬지 않고 반복했다. 인간과 나란히 작업하도록 설계된 이 협동 로봇은 미래 제조 현장에서 사람과 로봇이 어깨를 맞대고 일하는 장면을 미리 보여주는 듯했다. 화려한 퍼포먼스보다는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실용적인 작업이었다.
일본 로봇 산업의 방향성은 여기에 있다. 전통 제조 강국의 저력을 바탕으로 산업 현장의 효율성을 끌어올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가와사키중공업의 휴머노이드 로봇 칼레이도의 경우 소방 호스를 들고 화재를 진압하고 쓰러져 있는 대형 선반을 세워 안전 공간을 확보하는 등 재난 구조용으로 만들어졌다. 권투 자세를 취하며 펀치를 날리고, 탁구채를 잡고 스매시를 날리는 중국 휴머노이드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피지컬 AI에 대한 기대감은 전시장 곳곳에서 느껴졌다. 기조연설이 열리는 강연장 자리는 만석이었고 서서 듣는 관람객으로 통로가 가득 찰 만큼 붐볐다. 일본 로봇·자동화 분야의 대표 기업 화낙 부스 전면에는 "화낙 로봇은 피지컬 AI의 현장 확산을 가속한다"는 문구가 내걸렸다. 실제로 말로 명령하면 로봇이 움직이는 생성AI 데모, 사람을 인식해 실시간으로 피하는 AI 로봇, 손글씨 주문서를 읽고 부품을 골라내는 키팅 작업을 하는 로봇 등이 관람객들을 맞았다.
이같은 피지컬 AI 바람 속에는 일본의 위기의식이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에 대응해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일본에서는 2030년에는 644만명, 2040년에는 1100만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로보틱스 시장 규모는 503억8000만달러(77조7000억원)로 추정되고 2030년에는 650억2000만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이날 기조연설에서 아베 켄이치로 화낙 CEO(최고경영책임자)는 스크린에 피지컬 AI라는 단어를 크게 띄웠다. 그는 "노동력 부족, 기술 전승, 비용 절감, 다품종 대응, 에너지 절약이라는 산업 현장의 5대 과제를 로봇으로 해결할 것"이라며 "제조업에서 AI가 아무리 진화해도 물리적 실체를 가져야 비로소 작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일본의 승리 방정식은 현장의 지식과 경험·노하우를 활용하고 인력에 의존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효율 좋게 품질 높은 생산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품 공급망에서는 일본 기업의 존재감이 더욱 두드러진다. 정밀 감속기 전문 기업 하모닉드라이브시스템즈 부스 진열대에는 손가락 마디만 한 것부터 접시 크기까지 다양한 감속기 실물이 줄지어 놓였다. 로봇 관절이 정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이런 부품 덕분이다. 하모닉드라이브시스템즈 관계자는 "일본 시장 점유율 90%에 달하고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 로봇 기업들까지 납품처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어느 나라에서 만든 로봇이든 내부를 열어보면 일본산 부품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셈이다.
전통 광학·정밀기계 기업들이 로봇 부품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흐름도 뚜렷하게 감지됐다. 전기기기 기업 키엔스는 로봇의 '눈'에 해당하는 산업용 비전 시스템과 센서 기술을 선보였다. 대형 스크린에는 레이저 센서가 금속 부품의 치수를 순식간에 측정하는 장면이 반복 재생됐다. 카메라로 유명한 니콘은 컨베이어 위를 이동하는 부품의 속도와 방향을 카메라로 판단해 컨베이어를 멈추지 않고 볼트를 조이는 비전 트래킹 기술을 공개했다.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업도 활발하다. 화낙은 엔비디아와 가상공장 시뮬레이션 실시간 연동, AI 모방학습 협력을 공식화했고, 구글과는 제미나이 기반 생성 AI 기술을 로봇에 접목해 자연어 음성 명령으로 로봇을 제어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60여년간 폐쇄적 기업문화를 고수해온 화낙은 AI 시대를 맞아 로봇 제어 소프트웨어를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개방형으로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산업용 로봇 기업 야스카와전기도 엔비디아와 협업 중이다. 가상공간에서 로봇에게 동작을 반복 학습시키는 엔비디아의 시뮬레이션 플랫폼 '아이작 랩'을 활용해 사람의 포장 동작을 스스로 학습하는 신형 양팔 로봇 '모토맨 넥스트'를 고도화하고 있다. 가와사키중공업도 엔비디아와 피지컬 AI 공동 개발에 나서는 등 일본 주요 로봇 기업들의 빅테크 협업이 잇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