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선 타는 이재용 회장, 단언하는 한마디 "저희가…"

박종진 기자
2026.06.25 05:50

[종진's 종소리]

[편집자주] 필요할 때 울리는 종처럼 사회에 의미 있는, 선한 영향력으로 보탬이 되는 목소리를 전하겠습니다.

"저희가 공장을 짓겠다고 하면 전 세계 어디에서도 저희에게 청탁을 하지 우리가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2017년 12월, 서울고법 법정에서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같이 단언했다. 국정농단 사태 여파로 곤욕을 치르던 중 평택 반도체 공장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청탁을 했느냐는 특검 측의 '황당한' 질문에 참다못해 그간의 억울함을 쏟아낸 듯 보였다. 기업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삐뚤어진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지만 공장을 건립하는데 발목을 잡는 규제와 까다로운 절차가 많다는 반도체업계의 하소연은 이어지고 있다. 안팎에서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보다는 빠릅니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다. 반면 우리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는 중국은 반도체 투자에 필사적이다.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공장을 지을 때 경험한 사례들은 아직도 회자된다. 중국 당국은 전담 TF(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모든 인허가 절차를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다. 땅을 파다가 수천년전 고대 유물이 나왔는데도 옮겨버리고 공사를 계속했다는 후문이 나올 정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광주·전남에 수백조원 규모의 천문학적 투자를 곧 발표한다. 양사가 좋아서 호남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게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안다. 삼성전자는 한창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집중하고 싶고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 외에 마땅한 해외 생산거점이 없는 탓에 미국·일본 등에 공장 설립을 원한다. 한 관계자는 "마지막 순간이라도 기업에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안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재명 대통령의 강력한 호남 발전 의지에 총수들이 결단을 내렸을 뿐이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살벌함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주요 지도자와 CEO(최고경영자)들이 참고한다는 손자병법에는 '전쟁은 속임수(兵者詭道也)'라고 정의돼 있다. 실제 각국은 미래 패권을 결정지을 반도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손자병법 첫문장처럼 나라의 존망이 달렸다고 보고 있다. 반면 우리는 인프라가 열악한 호남으로 반도체 공장을 내몰고 있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줘도 모자랄 판에 불필요한 힘 빼기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복합단지)를 꼭 해야겠다면 초유의 투자에 초유의 지원으로 화답해야 한다. 각종 행정 절차부터 전력과 용수, 주민 간 갈등 해소까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특혜를 쏟아 부어줘야 한다. "송전탑 하나 세우는 데만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데 일단 투자 발표는 하지만 이게 되겠느냐"는게 지금 업계가 보는 냉정한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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