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열어보면 일본산"...일할 사람 없는 日 '피지컬 AI'로 채운다

아이치현(일본)=강주헌 기자, 이정우 기자
2026.06.26 07:00

[글로벌 로봇 패권 전쟁]2-下

[편집자주] AI(인공지능) 기술혁신이 로봇산업의 미래마저 앞당기고 있다. 이미 로봇이 떠받치는 '7경원' 규모의 피지컬 AI 시장 선점을 위한 국가간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에 한국을 비롯해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 로봇 강국의 경쟁력을 분석하고 향후 관련 사업 패권을 잡기 위한 전략을 모색해봤다.

로봇 안을 열어보면 일본이 있다…제조 강국의 저력
한국·일본 로보틱스 산업 각 공급망 단계별 비교/그래픽=최헌정

일본 로봇 산업의 경쟁력을 완성품 대수로만 따지면 절반밖에 못 보는 셈이다. 제조업 강국 일본이 쌓아온 '소재-부품-완성품'의 수직 통합형 공급망은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자산이다. 여기에 화낙·야스카와 등 주요 기업들이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와 피지컬 AI(인공지능) 협업을 본격화하면서 산업용 로봇의 지능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로봇 산업은 크게 세 단계 공급망으로 나뉜다. 원자재·소재를 공급하는 업스트림, 감속기·서보모터 등 핵심부품을 만드는 미드스트림, 완성품 조립과 SI(시스템통합)를 담당하는 다운스트림이다. 일본은 이 세 단계를 수직으로 연결한 통합형 구조를 갖추고 있다. 원자재·소재 분야에서 일본은 특수강·세라믹 등 첨단소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 중이다. 제련부터 열처리까지 공정을 내재화해 부품 경쟁력의 기반을 스스로 받치는 구조다. 희토류 화합물의 대중국 수입 의존도가 높다는 약점은 있지만, 특수강·자석 합금 소재 가공 기술을 내재화해 공급 안정성을 일정 부분 확보하고 있다.

핵심 부품 분야의 강점은 더욱 눈에 띈다. 정밀감속기는 서보모터의 빠른 회전을 느리지만 강한 힘으로 바꿔 로봇 관절의 정교한 제어를 담당하는 핵심 부품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하모닉드라이브시스템즈가 글로벌 하모닉 감속기 시장의 73.3%를, 나브테스코가 RV(사이클로이드)감속기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소형·협동 로봇에는 하모닉 감속기, 중대형 제조 로봇에는 RV감속기가 주로 사용된다. 서보모터 분야도 화낙·야스카와전기·미쓰비시전기·파나소닉이 정밀 제어기술 면에서 세계 표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 만든 로봇이든 내부를 열어보면 일본산 부품이 들어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이유다.

완성품에서는 화낙·야스카와·엡손·가와사키 등 4대 기업이 글로벌 산업용 로봇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총 출하량의 70% 이상을 수출하며, 2024년 기준 신규 설치 대수는 4만4000대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서비스 로봇용 SI 영역과 휴머노이드 분야에서는 미국·중국에 비해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지만, 공급망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빅테크와의 AI 협업까지 더하면서 산업용 로봇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이어가려는 모습이다.

이같은 수직 통합형 공급망 구조는 한국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한국은 근로자 1만명당 1012대의 로봇을 운용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화 국가로, AI·소프트웨어 융합 역량이 강점이다. 하지만 핵심부품 국산화율이 40%대에 머물러 완성품 생산이 늘수록 부품 수입도 함께 증가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로봇으로 '일손 부족' 해결하는 日정부
/그래픽=최헌정

일본 정부는 로봇을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핵심 수단으로 보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저출산·고령화로 제조업뿐 아니라 물류, 간병, 농업 현장까지 인력난이 심화하는 점을 고려해 로봇을 '사회 필수 기능' 유지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일본의 산업 정책 담당 부처인 경제산업성의 '링(RING) 프로젝트'는 현장형 전략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지난해 6월 출범한 RING은 지자체와 지원기관, 로봇 관련 기관을 연결해 지역 중소기업의 로봇 도입을 지원하는 네트워크다. 대기업 공장 중심의 자동화를 넘어 지방 중소기업과 서비스 현장까지 로봇 활용 범위를 넓히겠다는 취지다.

물류 분야에서는 자율배송 로봇 실증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3년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저속·소형 자율배송 로봇의 공도 주행을 허용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지난해 7월 도쿄~오사카 구간 등을 염두에 두고 화물을 무인·자동으로 운송하는 '오토플로 로드'를 공개하며 장거리 물류 자동화 구상을 구체화했다. 트럭 운전자의 고령화와 노동시간 규제 강화로 불거진 물류 수송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한 사업이다.

간병과 농업도 주요 실증 대상이다. 후생노동성과 경제산업성은 간병기술 활용 우선분야를 9개 영역 16개 항목으로 확대했다. 구체적으로 △환자 이송 △이동 보조 △배설·목욕 지원 △치매 환자 돌봄 △모니터링 등 간병 현장의 부담이 큰 업무에 로봇과 정보통신기술을 적용하려는 흐름이다. 농림수산성도 자율주행 농기계, 수확·운반 로봇, 드론 등을 활용해 농촌의 인력난 완화를 지원하고 있다.

이런 정책의 저변에는 산업용 로봇 분야 경쟁력을 활용해 서비스 로봇과 피지컬 AI(인공지능) 기술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지난 3월 일본 정부는 'AI 로보틱스 전략'을 발표하며 로봇 경쟁이 제조 현장을 넘어 물류·간병·농업 등 실제 현장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장 실증을 통해 안전성·운용성·데이터를 먼저 확보하는게 선도 국가와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한 핵심 요소라고 판단한 것이다.

물류·간병·농업 현장을 주요 실증 대상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처음부터 고난도 로봇 기술 경쟁에 뛰어들기보다 2030년까지 순찰·점검, 물건 이동·운반처럼 실제 현장 적용 가능성이 높은 작업부터 실증해 점차 시장을 형성해 간다는 전략이다.

로봇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전통적으로 제조로봇에 강했지만 서비스 로봇과 휴머노이드, 피지컬 AI 산업이 빠르게 커지는 과정에서 대응이 다소 늦었다"며 "일본 정부도 이런 부족함을 인식하고 기존 제조로봇의 강점을 활용하거나 해외 우수 기술을 자국 인프라에서 실증해 데이터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피지컬 AI 선도국을 추격하려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日산업현장 문제 피지컬 AI로 해결"..부품 들고 로봇시장 잡는다[르포]
지난 11일 일본 아이치현 스카이엑스포에서 열린 '로봇 테크놀로지 재팬 2026'에 전시된 토요타의 AI(인공지능) 농구 로봇 '큐'(CUE) 가 자유투 시연에 나섰다. /사진=강주헌 기자

지난 11일 일본 아이치현 스카이엑스포에서 열린 '로봇 테크놀로지 재팬 2026'. 전시장 한 부스에 모인 수백명의 관람객의 눈은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의 손 끝을 응시했다. 토요타가 개발한 AI(인공지능) 농구 로봇 '큐'(CUE)의 최신 모델 '큐7'이 자유투 성공에 이어 3점슛을 시도하는 순간이었다. 슛을 넣자 장내에서는 탄성과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이후 열린 시연에서는 3점슛이 두 번 연속으로 빗나가기도 했다. 실패 직후 로봇이 손을 눈가로 가져가 눈물 닦는 시늉을 하자 장내에 웃음이 번졌다.

2022년 첫 개최 이래 산업용 로봇을 주로 다뤄온 이 행사에서 올해 처음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이 전시됐다. 피지컬 AI를 향한 시대 변화에 화답한 셈이다. 행사가 열린 아이치현은 글로벌 1위 자동차 기업 토요타 본사가 위치한 일본 제조업의 중심지다. 토요타는 모빌리티(이동성) 기업으로의 변모를 꾀하면서 그룹 내 프론티어 연구소를 두고 로봇 기술 개발까지 역량을 확장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츠지모토 타카요시 토요타 프론티어 연구소 R-프론티어부 애슬레틱 인텔리전스 그룹 매니저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시연하면서 일본도 이 산업에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며 "토요타는 자동차 제조로 유명한 기업이지만 기업 내에 연구센터를 두고 로봇을 사회에 실용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아직은 회사에서 전력을 쏟는 분야는 아니지만 로봇 시대에 대처하는 방향으로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일본 아이치현 스카이엑스포에서 열린 '로봇 테크놀로지 재팬 2026'에 전시된 토요타가 개발한 AI(인공지능) 농구 로봇 '큐'(CUE) 시리즈. /사진=강주헌 기자

현장을 찾은 관람객들의 시선은 화려한 퍼포먼스에만 머물지 않았다. 바로 옆 부스에서는 가와다 로보틱스의 양팔 휴머노이드 '넥스테이지'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컨베이어 위 물건을 집어 상자에 담고, 뚜껑을 닫은 뒤 도장까지 찍어 건네는 일련의 작업을 쉬지 않고 반복했다. 인간과 나란히 작업하도록 설계된 이 협동 로봇은 미래 제조 현장에서 사람과 로봇이 어깨를 맞대고 일하는 장면을 미리 보여주는 듯했다. 화려한 퍼포먼스보다는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실용적인 작업이었다.

일본 로봇 산업의 방향성은 여기에 있다. 전통 제조 강국의 저력을 바탕으로 산업 현장의 효율성을 끌어올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가와사키중공업의 휴머노이드 로봇 칼레이도의 경우 소방 호스를 들고 화재를 진압하고 쓰러져 있는 대형 선반을 세워 안전 공간을 확보하는 등 재난 구조용으로 만들어졌다. 권투 자세를 취하며 펀치를 날리고, 탁구채를 잡고 스매시를 날리는 중국 휴머노이드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지난 11일 일본 아이치현 스카이엑스포에서 열린 '로봇 테크놀로지 재팬 2026'에 전시된 가와다 로보틱스의 양팔 휴머노이드 '넥스테이지'. /사진=강주헌 기자

피지컬 AI에 대한 기대감은 전시장 곳곳에서 느껴졌다. 기조연설이 열리는 강연장 자리는 만석이었고 서서 듣는 관람객으로 통로가 가득 찰 만큼 붐볐다. 일본 로봇·자동화 분야의 대표 기업 화낙 부스 전면에는 "화낙 로봇은 피지컬 AI의 현장 확산을 가속한다"는 문구가 내걸렸다. 실제로 말로 명령하면 로봇이 움직이는 생성AI 데모, 사람을 인식해 실시간으로 피하는 AI 로봇, 손글씨 주문서를 읽고 부품을 골라내는 키팅 작업을 하는 로봇 등이 관람객들을 맞았다.

이같은 피지컬 AI 바람 속에는 일본의 위기의식이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에 대응해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일본에서는 2030년에는 644만명, 2040년에는 1100만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로보틱스 시장 규모는 503억8000만달러(77조7000억원)로 추정되고 2030년에는 650억2000만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이날 기조연설에서 아베 켄이치로 화낙 CEO(최고경영책임자)는 스크린에 피지컬 AI라는 단어를 크게 띄웠다. 그는 "노동력 부족, 기술 전승, 비용 절감, 다품종 대응, 에너지 절약이라는 산업 현장의 5대 과제를 로봇으로 해결할 것"이라며 "제조업에서 AI가 아무리 진화해도 물리적 실체를 가져야 비로소 작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일본의 승리 방정식은 현장의 지식과 경험·노하우를 활용하고 인력에 의존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효율 좋게 품질 높은 생산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품 공급망에서는 일본 기업의 존재감이 더욱 두드러진다. 정밀 감속기 전문 기업 하모닉드라이브시스템즈 부스 진열대에는 손가락 마디만 한 것부터 접시 크기까지 다양한 감속기 실물이 줄지어 놓였다. 로봇 관절이 정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이런 부품 덕분이다. 하모닉드라이브시스템즈 관계자는 "일본 시장 점유율 90%에 달하고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 로봇 기업들까지 납품처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어느 나라에서 만든 로봇이든 내부를 열어보면 일본산 부품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셈이다.

일본 로봇·자동화 분야의 대표 기업 화낙의 아베 켄이치로 CEO(최고경영책임자)가 지난 11일 일본 아이치현 스카이엑스포에서 열린 '로봇 테크놀로지 재팬 2026'에서 구글과의 협업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강주헌 기자

전통 광학·정밀기계 기업들이 로봇 부품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흐름도 뚜렷하게 감지됐다. 전기기기 기업 키엔스는 로봇의 '눈'에 해당하는 산업용 비전 시스템과 센서 기술을 선보였다. 대형 스크린에는 레이저 센서가 금속 부품의 치수를 순식간에 측정하는 장면이 반복 재생됐다. 카메라로 유명한 니콘은 컨베이어 위를 이동하는 부품의 속도와 방향을 카메라로 판단해 컨베이어를 멈추지 않고 볼트를 조이는 비전 트래킹 기술을 공개했다.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업도 활발하다. 화낙은 엔비디아와 가상공장 시뮬레이션 실시간 연동, AI 모방학습 협력을 공식화했고, 구글과는 제미나이 기반 생성 AI 기술을 로봇에 접목해 자연어 음성 명령으로 로봇을 제어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60여년간 폐쇄적 기업문화를 고수해온 화낙은 AI 시대를 맞아 로봇 제어 소프트웨어를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개방형으로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산업용 로봇 기업 야스카와전기도 엔비디아와 협업 중이다. 가상공간에서 로봇에게 동작을 반복 학습시키는 엔비디아의 시뮬레이션 플랫폼 '아이작 랩'을 활용해 사람의 포장 동작을 스스로 학습하는 신형 양팔 로봇 '모토맨 넥스트'를 고도화하고 있다. 가와사키중공업도 엔비디아와 피지컬 AI 공동 개발에 나서는 등 일본 주요 로봇 기업들의 빅테크 협업이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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