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인공지능) 가속기 '베라 루빈'에 탑재될 기업용 SSD(eSSD) 양산에 돌입했다. AI 서버에서 스토리지(저장장치)가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면서 eSSD를 중심으로 낸드플래시(이하 낸드) 시장 주도권 경쟁도 본격화되고 있다. 반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AI 서버용 고부가가치 낸드 생산을 확대하면서 소비자용 낸드 공급 부족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AI 인프라에 최적화된 PCIe 6.0 기반 eSSD 'PM1763' 양산을 시작했다고 8일 밝혔다. PM1763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에 탑재될 예정이다. 9세대 V낸드와 4나노(nm·1nm=10억분의 1m) 기반 신규 컨트롤러를 탑재해 제품 성능과 전력 효율을 크게 높인 것이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신제품을 4TB(테라바이트), 8TB, 16TB 등 3가지 용량으로 출시한다. 16TB 모델의 경우 업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구현했다. 연속 읽기·쓰기 속도의 경우 각각 최대 초당 2만8400MB(메가바이트), 2만1900MB로 전작(PM1753) 대비 약 2배 향상시켰다.
전력 효율도 전작보다 1.8배 이상 개선했다. 콜드 플레이트를 반도체 소자에 직접 부착하는 D2C(Direct-to-Chip) 액체 냉각 방식을 적용해 고부하 환경에서도 장시간 최고 성능을 유지하도록 설계했다. 아울러 PQC(Post-Quantum Cryptography) 암호화 알고리즘과 TDISP(TEE Device Interface Security Protocol) 기술을 적용해 데이터 전송 과정의 보안성도 강화했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데이터 규모가 급증하면서 낸드는 단순 저장 장치를 넘어 메모리 연산을 뒷받침하는 핵심 솔루션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eSSD는 데이터센터와 서버 환경에 최적화된 스토리지로 대량의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처지할 수 있는 핵심 인프라로 평가된다.
SK하이닉스는 액체 냉각을 지원하는 'PEB210 E1.S(9.5mm)', 초고속·고용량 데이터 처리에 최적화한 'PS1110 E3.S', 셀 하나에 4비트(bit)를 저장하는 QLC(Quadruple Level Cell) 기반의 122TB 'PS1101 E3.S' 등을 앞세워 AI 데이터센터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eSSD 시장 규모는 지난해 241억달러(약 36조원)에서 올해 1540억달러(약 233조원)로 커지며 1년 만에 6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eSSD 시장 확대에 맞춰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들이 AI 서버용 고부가가치 낸드 생산을 늘리면서 소비자용 낸드 공급은 상대적으로 빠듯해지고 있다. 산제이 마흐로트라 마이크론 CEO(최고경영자)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메모리 제조사들이 생산능력을 낸드에서 D램으로 전환하면서 낸드 비트 공급 증가가 제약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글로벌 PC 제조사 레노버는 최근 글로벌 판매용 노트북에 중국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가 생산한 낸드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노버가 중국 내수용이 아닌 글로벌 판매용 제품에 중국산 낸드를 채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비자용 낸드 공급난이 심화되면서 글로벌 PC 제조사들도 조달처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인 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급증하는 낸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능력 확대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내년 클린룸 오픈을 앞둔 평택캠퍼스 P5(5공장)에 10세대 낸드 라인을 구축할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에 80조원을 투자해 낸드 생산 거점인 M17 팹을 건설한다. M17은 내년 착공해 2029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한다. 업계 관계자는 "AI 인프라 투자가 이어지는 동안 기업용 SSD와 고성능 낸드 수요는 구조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들이 생산능력을 확대하더라도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