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가 선박 건조를 넘어 에너지 인프라 사업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와 에너지 전환이 맞물리면서 발전설비, 해상풍력, 데이터센터 등 에너지 인프라가 조선업계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7일 글로벌 데이터센터 인프라 솔루션 기업인 '슈나이더 일렉트릭'과 부유식 데이터센터(FDC) 인프라 기술 공동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양사는 해상 플랫폼 기반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구축하고, 데이터센터 핵심 기술과 해상 환경에 최적화된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FDC는 육상 데이터센터의 부지 확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해수를 활용한 자연 냉각으로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어 AI 시대 데이터센터 수요에 대응할 대안으로 꼽힌다.
전력 수요 증가에 맞춰 발전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계열사 HD현대중공업은 최근 미국 에이페리온 에너지 그룹(AEG)과 선박용 '힘센(HiMSEN)' 엔진 기반 발전설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6271억원으로 발전용 엔진 계약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AI 확산에 따른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선박용 엔진을 육상 발전설비에 적용한 대표 사례다. 이와 함께 HD한국조선해양은 소형모듈원전(SMR), 탄소포집·저장(CCS),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우주 발사대 등으로 에너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조직 개편을 통해 에너지 인프라 사업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존 해양사업부문(OBU)에 E&I 사업부문을 흡수·통합해 에너지플랜트사업부문(EPU)을 신설했다. 해양플랜트는 물론 육상 플랜트까지 아우르는 사업 체계를 구축하고, 해상풍력과 부유식 원유생산설비(FPSO), 암모니아 발전, 해상 원자력 발전, 플로팅 데이터센터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EPU는 출범 직후인 지난해 말 약 1조9700억원 규모의 신안우이 해상풍력 EPC(설계·조달·시공) 사업을 수주하며 국내 해상풍력 시장에도 진출했다. 한화오션은 국내 최초로 15MW(메가와트)급 터빈 설치가 가능한 WTIV(풍력발전기 설치선)를 직접 건조해 투입할 예정이다. 당시 필립 레비 한화오션 에너지플랜트사업부장은 "신안우이 해상풍력 EPC 계약은 한화오션이 조선·해양을 넘어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밝혔다.
삼성중공업은 해양 에너지 생산설비 분야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회사는 글로벌 FLNG(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 시장의 강자로 꼽힌다. FLNG는 해상에서 천연가스를 생산·액화·저장·하역까지 수행하는 종합 에너지 생산 플랫폼으로, 일반 선박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에너지 인프라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8조원 규모의 FLNG 계약을 따내는 등 해양 에너지 플랜트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또 FLNG를 통해 축적한 부유식 플랫폼 기술을 기반으로 FDC 사업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사들이 보유한 대형 구조물 제작 기술과 EPC 역량은 해상풍력, 발전플랜트, 부유식 데이터센터 등 차세대 에너지 인프라와 높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며 "AI 시대를 맞아 조선사들의 역할이 선박 제조를 넘어 에너지 인프라 공급자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