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철강사들 AI 시대 대비 조직 정비
AI(인공지능) 산업의 급성장은 국내 철강업계에도 새로운 활로를 열어줄 것으로 보인다. 주요 철강사들은 앞다퉈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AI 인프라용 강재 패키지를 구성하는 등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16일부터 '미래수요개발실' 운영을 시작했다. 이 조직은 기존 신강재 연구 및 판매 조직 등을 묶어 AX(AI 전환) 관련 강재 사업과 관련한 업무를 맡게 된다. 구체적으로 △데이터센터 △송배전망 △에너지저장장치(ESS) △발전 △휴머노이드 등 5개 분야를 확정했다. 대표 제품으로는 변압기용 방향성 전기강판(GO), 송전탑용 특화강, 배터리케이스·팩·랙용 특화강, 엑츄에이터용 NO(무방향성전기강판), 고강도 내진 구조재, 트레이·서버랙용 PosMAC, 압력용기용 후판, 고온용 STS(스테인리스) 등이 꼽힌다.
신규 수요는 글로벌 IT(정보통신)기업와 공조업체, 가전업체 등과 협업해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또 데이터센터 냉각수 탱크, 반도체 공장용 특화강 등 고객 맞춤형 제품 개발을 추진한다. 지난해 약 38만톤 수준이던 AX 산업용 강재 판매량도 2028년 52만톤, 2030년 100만톤까지 확대한다.
현대제철은 지난 3월 일찌감치 '차세대 전력 인프라 핵심산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신수요 대응에 나섰다. 데이터센터와 ESS, 송전탑 등 세가지를 차세대 전력 인프라 핵심 산업으로 규정하고 30~40여명 규모의 팀을 새롭게 구성했다. 특히 핵심 전략으로 '토탈 패키지 판매'를 내세웠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판재류부터 봉형강까지 전력 인프라에 들어가는 전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강점을 앞세웠다. 예를 들어 100㎿(메가와트)와 50㎿ 등 규모에 따라 패키지 모델을 구성해 고객이 원하면 이를 한 번에 제공하는 방식이다.
최근 유의미한 수주 성과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버랙과 데크플레이트, 케이블트레이 등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비구조재를 구조재와 함께 공급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하고 건설사를 중심으로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외 글로벌 기업들을 대상으로는 올해 4분기부터 제안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를 통해 현재 봉형강 매출에서 약 3%를 차지하는 데이터센터용 비중은 향후 6%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미 현대제철은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인천 서구에 건설 중인 데이터센터에 저탄소 제품 인증을 획득한 H형강 등 철강재를 공급한 경험이 있다.
동국제강은 맞춤형 대형형강인 '디-메가빔'을 중심으로 AI 데이터센터 밸류체인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영업본부 내 수출 전담 임원을 선임하고 산하에 영업·통상·물류 기능을 일원화해 조직 역량 강화에 나섰다. 향후 글로벌 고객 맞춤형 직거래 솔루션을 구축해 불필요한 유통 단계를 줄인다는 방침이다. 내수 시장 상황에 따라 수출 비중도 지난해 11%에서 올해 최대 15% 수준까지 확대 운영한다.
세아제강도 AI 데이터센터 관련 제품을 중심으로 영업·마케팅을 강화할 예정이다. STS 파이프 제품의 경우 냉각수 배관으로 공급될 수 있다.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로 발전소용 오일·가스를 수송하는 송유관 등의 제품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데이터센터용 강재 수요 확대는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달 철강 수출액은 전년 동월보다 9.6% 증가한 21억4000만달러로 집계됐다. 미국 등 해외 데이터센터 건설이 늘면서 관련 자재 수요가 확대된 영향으로 분석됐다. 특히 업계는 패키지 형태로 강재로 수출하면 높은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④사이클 대신 AI 스페셜
"사이클은 없다."
최근 석유화학 및 철강업계에 만연된 인식이다. 과거 수 년 단위로 호황과 불황을 오가던 법칙이 깨졌다는 것이다. 중국의 과잉 공급과 수요 침체라는 구조가 만든 공통 변화다. 중국 기업들은 값싼 가격에 괜찮은 품질의 석유화학 및 철강 제품을 찍어낸지 오래다. 건설업과 같은 주요 전방 산업 역시 국가 성장기의 업황을 보이기 힘든 상황이다. 상승세를 다시 탄다 해도 마진을 고려할 때 상당 물량을 '중국제'를 쓸 수밖에 없다.
이런 위기는 단기간 해결될 성격이 아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최근 지난해 철강 산업의 과잉 생산 규모를 6억4000만톤으로 추정했는데, 2028년에는 이 규모가 7억4500만톤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2028년까지 글로벌 차원에서 에틸렌 약 2800만톤, 프로필렌 약 1800만톤 규모의 신규 증설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공급과잉의 진원지에는 모두 중국이 있는 셈이다.
석유화학과 철강은 국가 기간산업으로 사실상 '산업의 쌀'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그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양대 업계가 부진에 빠질 경우 반도체와 자동차, 건설, 유통 등 전 산업이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과 지원책이 거론되는 이유다. 석유화학업계는 총 270만~370만톤 규모의 NCC(나프타분해설비) 생산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철강업계에는 K스틸법 등을 통한 지원이 거론되고 있다.
'산업의 쌀'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본원적 경쟁력 강화는 필수적이다. 스페셜티로 포트폴리오 전환이 이뤄져하는 이유다. 물량 대결로는 중국 업체를 이기기 어렵기 때문에 고부가가치 제품 시장을 재빨리 선점해야 한다는 얘기다.
AI(인공지능) 산업은 이같은 측면에서 국내 석유화학 및 철강업계의 매력적인 공략대상이 될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 건설만 봐도 각종 철강제와 석유화학 제품이 필요한 프로젝트다. 시장조사기관 모르도르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한국의 데이터센터 건설 시장 규모는 올해 69억9000만달러(약 10조원)에서 2031년 146억3000만달러(약 22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석유화학과 철강 모두 공통된 구조적 어려움에 직면해왔는데 AI 산업에도 각종 화학제품과 철강재가 사용될 수밖에 없기에 새로운 기회를 잡아야 할 것"이라며 "과거와 달리 새로운 제품을 재빨리 발굴하고, 고객 맞춤형 공급을 추진하는 등의 대응 전략 변화가 필요한 대목"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