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쟁이 장기화하지만 국내 정유사들이 원유 수입선을 다변화한 결과 수급불안은 피한 모습이다. 하지만 기존 중동산 원유를 중심으로 설계된 정제공정에 성상이 다른 원유를 투입하는 새로운 숙제를 떠안았다. 여기에 운송거리 증가에 따른 물류비 부담까지 커지면서 정유사들의 고민이 깊어진다.
21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지난 1~5월 국내에 도입된 중동산 원유 비중은 62.8%로 집계됐다. 2024년 71.5%, 2025년 69.1%와 비교하면 2년도 안돼 10%포인트 가까이 떨어진 수치다. 지난 2월28일 이란전쟁 발발 이후 북미와 아프리카 등으로 원유 도입선을 다변화한 영향이다. 정유업계는 수입선을 다변화한 덕분에 원유수급에는 큰 차질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원유를 확보하는 것보다 들여온 원유를 기존 공정에 맞춰 처리하는 일이다. 국내 정유시설은 그동안 중동산 중질유를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최적화돼왔다. 하지만 북미산, 아프리카산 등 성상이 다른 원유 비중이 확대되면서 공정운영 난도가 크게 높아졌다. 원유는 산지마다 황 함량과 밀도 등 성상이 모두 달라 기존 비율대로 투입할 경우 정제효율이 떨어질 뿐 아니라 공정운영 자체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탓이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은 실험실에서 원유를 샘플단위로 배합하며 최적의 투입비율을 찾는 작업을 반복한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실험실이 밤낮없이 돌아가고 있다"며 "새로운 원유가 들어올 때마다 배합비율을 다시 검증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현장에서는 원유의 특성을 분석하고 최적의 배합비율을 찾기 위해 AI(인공지능)를 동원하는 방법도 모색 중이다. 원유 배합비율을 맞춘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최종 생산되는 정유제품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과제다.
자연스레 비용부담도 커진다. 중동에서 국내까지 유조선이 도착하는 데는 통상 20~25일이 걸리지만 미국 걸프만에서 출발하면 40일 안팎이 소요된다. 운송기간이 길어질수록 용선료와 연료비, 보험료 등 물류비 부담도 함께 증가한다.
정부는 전쟁 직후 중동 외 지역에서 도입하는 원유의 운임부담을 한시적으로 덜어줬지만 이마저도 종료됐다. 중동산 원유보다 추가로 발생하는 운임에 대해 전쟁 이전에는 약 25%만 환급했지만 4~6월에는 석유수입부과금 납부한도인 리터당 16원 범위 내에서 운임차액 전액(100%)을 지원했다. 하지만 해당 조치가 지난 6월말 종료되면서 현재는 환급률이 다시 기존 수준인 25%로 돌아갔다.
업계 관계자는 "원유 수입선 다변화가 국가 에너지 안보 차원의 과제인 만큼 한시적 지원이 아니라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