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서 '난리난' 국산 윤활기유..완성차 생산까지 차질

김도균 기자
2026.08.09 08:30
5~6월 윤활기유 미국향 수출/그래픽=김지영

중동 전쟁 여파로 고성능 윤활기유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서 유럽 등 일부 지역에서 완성차 생산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안정적인 공급망을 갖춘 국내 정유업체가 대체 공급처로 주목받으면서 관련 사업 실적도 개선되는 모습이다.

9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신차 생산에 투입할 엔진오일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기존 재고가 지난 6월을 전후해 대부분 소진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배경에는 중동 공급망 붕괴가 있다. 유럽은 엔진오일의 핵심 원료인 그룹3 윤활기유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전쟁 과정에서 카타르 펄GTL, 사우디아라비아 사다라 등 중동 주요 생산기지의 가동에 문제가 생기면서 공급 부족이 발생했다. 여기에 국제유가 상승으로 정유사들이 휘발유와 항공유 등 수익성이 높은 경질 석유제품 생산을 확대하면서 상대적으로 중질 제품인 윤활기유 생산이 감소한 영향도 겹쳤다. 그룹3 윤활기유 수입량의 약 40%를 중동에 의존해온 미국에서도 공급 부족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정유사들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 단일 국가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그룹3 윤활기유 생산능력을 보유한 국가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엔무브와 에쓰오일(S-OIL) 두 회사만으로도 세계 그룹3 윤활기유 생산량의 약 40%를 담당해왔다. 실제 5~6월 미국으로 수출된 윤활기유는 3억6249만 달러 규모로 지난해 같은 기간 9906만 달러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유럽으로 수출된 윤활기유도 2배 이상 늘었다.

정유업계의 실적도 개선되고 있다. 지난 2분기 SK이노베이션은 3조4873억원, 에쓰오일은 965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두 회사 모두 전년 동기 대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SK이노베이션에서 윤활유 사업을 담당하는 SK엔무브는 691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며, 에쓰오일은 윤활 사업에서 4774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둬들였다.

시장에서는 이번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생산설비를 복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카타르에너지 최고경영자(CEO)는 펄GTL 설비 정상화에 최대 3~5년이 걸릴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하루 약 3만 배럴 규모의 그룹3 윤활기유 공급이 최소 2028년까지 시장에서 감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공급은 줄어들고 있지만 수요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AI(인공지능) 인프라 투자 확대와 첨단 제조업 성장으로 고성능 윤활기유의 새로운 수요처가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AI 데이터센터에서는 GPU(그래픽처리장치)의 발열을 낮추기 위한 액침 냉각 기술이 확산되는 가운데 윤활기유 기반 액침냉각유가 냉각 소재 후보로 검토되고 있다. 산업용 로봇 역시 감속기와 구동계의 높은 마찰과 토크를 견디기 위해 고성능 윤활유 사용이 증가하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의 공급 차질이 예상보다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산업체들이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며 "생산능력과 품질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국내 업체들의 시장 영향력이 한층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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