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에 투자한 외국 조선업체가 해당 업체의 본국에서 선박을 건조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 사실상 한화그룹을 겨냥한 조치로, 국내 조선소의 미국 선박 건조 가능성이 주목된다. 다만 미 의회가 반대하고 있어 실제 허용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이어질 전망이다.
13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은 미국 조선소에 투자하는 해외 조선업체가 본국 조선소에서 최대 2척을 건조해 미국에 납품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안보대통령각서(NSPM)를 확정했다. 미국 조선 인프라에 직접 투자하고 현지 고용·인력 양성에 나서는 해외 조선사가 본국에서 초도 물량을 건조한 뒤 미국 조선소에서 생산을 이어가도록 하는 방식이다.
전 세계 주요 대형 조선사 가운데 이 조건을 충족하는 곳은 현재 한화뿐이다. 앞서 한화는 2024년 필리조선소를 1억달러에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 8월 50억달러를 추가 투자해 생산능력을 연간 10~20척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 미국 해상 미사일 시험 계측선(MBIV) 2척을 수주하는 데도 성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가 현실화하면 한화는 국내 거제조선소에서 미국 선박을 건조한 뒤 필리조선소에서 후속 생산을 이어가는 사업 구조를 짤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외 조선소의 미국 선박 건조 허용을 직접 거론하면서 한·미 조선 협력의 시계가 더욱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함정의 해외 조선소 건조는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에 막혀 있지만 대통령 권한으로 면제할 수 있는 '웨이버'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핀란드 모델'로 불리는 핀란드의 미국 쇄빙선 건조다.
한·미 정부는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조선협력센터(KUSPC)' 개소식을 열고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의 본격 가동을 선언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내에서는 한국 기업의 뛰어난 기술력과 운영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다"며 "1500억달러 규모의 마스가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한국 조선사들의 미국 시장 공략도 한층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뿐 아니라 HD현대, 삼성중공업 등도 미국 조선소 투자·인수를 검토하는 동시에 현지 기업들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문제는 예산 권한을 쥔 미 의회가 이를 탐탁지 않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백악관 산하 관리예산실(OMB)은 해군이 해외 조선소와 계약해 수상전투함 2척과 비전투 보조함 2척을 건조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지난달 22일 하원을 통과한 국방수권법(NDAA)에는 조선 역량 및 인력 양성을 위해 한국과의 협력을 확대할 필요성이 언급됐으나, 전투함의 해외 건조를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업계에서는 상대적으로 가능성을 열어둔 상원을 활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를 재차 압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상원 군사위원회는 NDAA를 의결하면서 벌크 연료선과 전략 수송선을 최대 2척까지 해외 조선소에서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련 발언을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향후 어떤 법적·예산적 조치가 취해질지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미국 진출 기회를 잡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