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민의 전기차 생활문화] 전기차는 자동차 회사만의 시장이 아니다

홍보경 기자
2026.10.12 17:50

브랜드가 준비해야 할 것은 전기차로 달라지는 생활의 장면이다

전기차 여행객이 숙소에 도착해 충전기를 연결한다. 객실에 짐을 풀고 동네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다음 날 아침에는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받아 바닷가로 향한다. 이 여행에서 고객을 만나는 기업은 자동차 회사와 충전사업자만이 아니다. 숙박업체와 식당, 카페도 전기차 생활의 한 부분을 맡는다.

가을 여행객을 맞는 지역의 준비를 생각하다 보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기업으로 이어진다. 전기차가 늘어날 때 우리 회사에는 어떤 기회가 생기는가? 자동차 부품이나 배터리를 만들지 않는 기업도 이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이 확산되던 시절을 떠올려보자. 기기를 만드는 기업과 통신회사 주변으로 지도, 결제, 음악, 쇼핑, 배달 등 다양한 서비스가 자랐다. 기기를 쥔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지면서 사업의 기회도 넓어졌다. 전기차에서도 살펴볼 것은 그 차를 사용하는 사람의 하루다.

전기차는 정차 중의 시간을 활용할 조건을 바꾼다. 차종별로 차이는 있지만, 주차 상태에서 실내 온도를 유지하거나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기능을 제공하는 차량이 있다. 잠시 쉬고, 음악을 듣고, 다음 일정을 준비하는 장면을 더 편하게 만들 수 있다. 여기에 식사와 숙박 중 충전하는 습관이 더해지면 차와 생활공간의 관계도 달라진다.

나는 『전생이 온다』에서 이 변화를 전기차 생활, '전생'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전기차를 소유하는 사람에게 어떤 생활이 가능해지는지 함께 보자는 제안이다. 이 관점에서 기업은 새로운 고객의 필요를 찾을 수 있다.

커피 브랜드라면 차 안에서 마시기 편한 용기와 수령 방식을 고민할 수 있다. 생활용품 기업이라면 잠깐의 휴식에 필요한 물건을 쉽게 꺼내고 다시 보관하는 방법을 살필 수 있다. 콘텐츠 기업이라면 정차 중 짧게 즐기고 일정에 맞춰 마무리할 수 있는 경험을 제안할 수 있다. 기존 제품도 사용 장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선할 부분이 보인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전기차용'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일이 아니다. 실제 불편을 해결해야 한다. 컵이 차량의 홀더에 잘 맞는지, 물건이 주행 중 굴러다니지 않는지, 사용한 뒤 쉽게 닦고 보관할 수 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차에서 쓰는 제품은 좁은 공간과 이동이라는 조건을 견뎌야 한다.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충전 중 주문한 음식을 받을 수 있다면 편리할 것이다. 그러나 수령 장소가 불분명하거나 음식이 늦게 나와 충전을 마친 뒤에도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면 새로운 불편이 생긴다. 주문부터 수령, 다음 이동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설계해야 고객이 체감하는 가치가 생긴다.

따라서 전기차 생활을 겨냥한 사업은 장면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데서 시작하면 좋겠다. '전기차 운전자'라는 넓은 고객군보다 '여행 중 짧게 쉬는 가족', '아이를 기다리는 보호자', '하룻밤 머물고 다음 날 출발하는 숙박객'처럼 누구의 어느 순간을 도울 것인지 정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들이 겪는 불편 하나를 골라 작게 시험해보자. 카페는 픽업 안내를 바꿔볼 수 있고, 숙소는 충전 이용 안내와 주변 식사 정보를 예약 확인 메시지에 함께 보낼 수 있다. 생활용품 기업은 사용자가 물건을 꺼내고 쓰고 정리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고객이 편리하다고 말하는지, 실제 이용과 재구매로 이어지는지를 보고 확장하면 된다.

이 시장에서는 서로 다른 업종의 협력도 중요해진다. 충전사업자는 이용자의 체류 특성을 알고, 지역 상인은 먹거리와 경험을 제공하며, 숙박업체는 하룻밤의 일정을 연결한다. 각자가 잘하는 일을 이어 붙이면 고객은 여행 과정의 번거로움을 덜 수 있다. 협력의 성과는 고객이 시간을 아끼고 만족하는 경험에서 확인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연기관차 이용자에게도 유용한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 빠르고 정확한 픽업, 편안한 휴식, 쓰기 좋은 생활용품은 더 넓은 고객을 만날 수 있다. 전기차 생활은 기존 사업을 새로운 눈으로 관찰하게 하는 출발점이다.

미래의 자율주행이 이동 중 활동의 범위를 넓힐 가능성도 있다. 다만 운전자의 주의가 필요한 주행보조를 사용하는 동안에는 운전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이 지금 검증할 수 있는 기회는 정차와 충전, 목적지에서의 생활에도 충분히 있다.

기업은 제품을 개발할 때 기능과 가격을 묻는다. 이제 질문 하나를 더하자. 이 제품과 서비스는 고객의 어떤 순간을 더 좋게 만드는가? 전기차가 편한 아침과 덜 번거로운 여행, 더 즐거운 휴식을 가능하게 한다면 그 경험을 완성할 기업은 여러 업종에서 나올 수 있다.

자동차 회사가 새로운 차를 선보일 때, 다른 기업들도 그 차로 달라질 하루를 준비할 수 있다. 전기차가 늘어나는 길 위에서 우리 고객은 언제 쉬고, 무엇을 필요로 하며, 어디에서 지갑을 열 것인가? 그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는 기업에게 '전생'은 새로운 사업의 기회가 될 것이다.

조현민 | 전기차 생활문화 기획자 · ㈜이볼루션 대표 · 『제4의 공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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