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GIS(가스절연개폐장치) 분야에서 글로벌 톱티어에 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지난달 8일 경기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GRC)에서 만난 김용한 HD현대일렉트릭 개발담당 상무는 국내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420kV(킬로볼트) GIS'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전 세계를 기준으로도 420kV GIS 개발에 성공한 기업은 히타치에너지와 GE버노바 두 곳뿐이다. 김 상무는 "단순한 제품군 확대를 넘어 유럽을 중심으로 강화되는 육불화황(SF6) 규제와 탄소중립 요구에 대응할 전략 제품군을 확보한 셈"이라며 "고객사와 테스트를 진행 중이며, 이르면 연말쯤 계약을 맺고 내년에 납품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420kV급 GIS는 유럽과 중동의 기간 송전망과 대규모 변전소에 적용되는 초고압 핵심 설비다. 기존 GIS에는 절연·차단 성능이 우수한 육불화황(SF6)이 주로 사용됐지만, 지구온난화지수가 높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왔다. 실제 유럽연합(EU)은 2032년부터 SF6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친환경 GIS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김 상무는 "제품 개발을 완료한 이후 납기 경쟁력을 갖춘 저희에게 고객사 방문과 공급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다. 친환경 가스는 SF6보다 절연·차단 특성에서 불리한 만큼 이를 보완하면서 기계적 동작의 신뢰성과 유지보수성까지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상무는 "기존에 개발한 145kV·170kV 친환경 GIS보다 전압과 차단용량이 한층 높고 더욱 까다로운 운전 조건을 충족해야 해 설계부터 최종 인증시험까지 기술적 난도가 매우 높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HD현대일렉트릭은 2024년 개발에 착수해 올해 인증시험을 마치기까지 약 3년만에 개발을 끝냈다. 업계에서도 예상보다 빠른 개발 속도에 관심을 보였다는 게 김 상무의 설명이다. 비결은 스위스 연구소와 국내 개발 조직 간 협업에 있었다. 20여명의 최고 전문가가 근무하는 스위스 연구소를 중심으로 국내 연구진이 기술 역량을 결집했고, 실패를 문책하기보다 포용해 도전하는 회사 문화가 이 성과를 뒷받침했다고 한다.
HD현대일렉트릭은 2028년까지 245kV·300kV급, 2029년까지 수출용 170kV급 제품을 순차적으로 개발해 친환경 GIS 라인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유럽 송전계통 최고 전압인 420kV급 개발을 완료한 만큼 축적한 기술과 경험을 활용해 후속 제품 개발엔 좀 더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상무는 "유럽 친환경 GIS 시장은 연평균 약 20% 성장해 2030년 약 3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며 "풀라인업을 갖춰 유럽 시장에서 10~15%의 점유율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북미·중동·아시아 등으로도 환경 규제와 친환경 제품 수요가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객사 확보 전략으로는 고객 중심의 대응을 꼽았다. 김 상무는 "경쟁력 있는 제품 라인업과 안정적인 품질은 기본이고 신속한 납기 대응과 빠른 고객 지원 역량이 더해져야 한다"며 "결국 가장 강한 전략은 이런 기본을 꾸준히 지키는 데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 쌓아온 신뢰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선도적 입지를 확보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