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괴롭다"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63)이 사망 전날인 2일 밤늦게 한국에 있는 지인에게 만취한 상태로 전화를 걸어 "힘들고 괴롭다"는 말을 되풀이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그는 하소연 다음날인 3일 오전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추정되는 질환으로 돌연사했다.
이 같은 점에 비춰볼 때 장진호 전 진로 회장(이하 장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갑자기 숨을 거둔 이유는 오랜 도피생활에 따른 스트레스와 상실감 등이 주요 원인으로 파악된다. 10년간의 방랑생활에 따른 괴로움과 피로감 등이 심신에 압박을 준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분식회계와 비자금 횡령 등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해외로 도피한 장 회장이 캄보디아를 거쳐 중국에 이르는 10년에 걸친 방랑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장 회장이 이끌던 진로그룹은 1996년 재계 순위 19위까지 오르는 등 급성장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몰락했다. 2003년 법정관리와 계열사 분할 매각을 통해 공중분해 됐다. 장 회장은 이 과정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비자금 횡령 등으로 징역 2년6월·집행유예 5년형을 받았다.
장 회장은 집행유예 기간 중이던 2005년 캄보디아로 도피했다. 하지만 캄보디아에서도 순탄치 않은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피 이전이던 2002년 취득한 캄보디아 국적으로 은행 등을 운영했지만 은행 매각 과정에서 신뢰를 잃어 입국 5년만인 2010년 중국으로 도피처를 옮기는 신세가 된다.
장 회장은 캄보디아에서 ABA은행(아시아선진은행)을 비롯해 부동산 개발회사, 스몰카지노 등을 운영했다. ABA은행은 1996년 진로그룹이 설립한 은행으로 2003년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도 채권단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은행 뿐 아니라 부동산개발회사, 스몰카지노 등도 운영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ABA 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탈세 혐의가 불거지면서 캄보디아 정부의 신뢰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 회장은 2010년 캄보디아를 떠나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에서도 게임업체 등에 투자했지만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장 회장은 재기를 노린 캄보디아에서도 실패하고 중국으로 건너간 이후 상실감과 스트레스를 크게 느낀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지인들에게 최근 들어 고충을 많이 하소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 때 재계 19위까지 올랐던 대기업 총수가 그룹이 산산조각나고 캄보디아와 중국에서 재기도 실패하면서 느끼는 비애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