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마트가 인도네시아에서 운영 중인 점포 가운데 일부를 '그로서리(식료품)' 전문 매장으로 추가 리뉴얼한다. 지난해 1월과 올해 1월 그로서리 전문 매장으로 새단장한 자카르타 '간다리아시티점'과 '꾸닝안시티점'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지난 8월 첫선을 보인 발리점 도소매 복합 매장(하이브리드)도 초기 호실적을 내자 과감하게 후속 투자에 나선 것이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롯데마트는 내년 중 자카르타에 위치한 '파사르레보점'을 포함해 총 3개 점포를 그로서리 전문 매장으로 리뉴얼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롯데마트 파사르레보점은 2022년 설립한 K푸드 연구·교육 기관인 '푸드 이노베이션 랩(FIL)'이 위치한 점포다. 이곳에서 '요리하다'를 비롯한 가정간편식(HMR)을 비롯해 김밥과 떡볶이, 닭강정 등 인도네시아 매장 내 '요리하다 키친'에서 판매 중인 K푸드 즉석조리 식품 조리법을 개발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인도네시아 점포를 그로서리 전문 매장으로 순차적으로 리뉴얼해서 실적 반등을 노린다는 전략이다. 현지 매장 리뉴얼은 국내 점포와 비교해 투자 비용이 훨씬 적고, 운영 인력의 인건비가 낮아 투자 대비 효율성이 높다. 이는 롯데가 발빠르게 후속 리뉴얼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원동력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롯데마트 인도네시아 법인은 매출 1조1005억원, 영업이익 152억원의 실적을 거뒀다. 진출 초기인 2010년대 초반과 비교해 매출은 약 2배 늘었고, 영업이익은 흑자 전환해 최근 5년간 연평균 100억원대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올해 상반기 실적은 매출 6051억원, 영업이익 97억원으로 집계됐다.
롯데그룹 유통 사업을 총괄하는 롯데쇼핑은 현재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해외 사업을 추진 중이다. 올해 5월엔 싱가포르 시장에 새롭게 진출했다. 롯데쇼핑은 지난 15일 진행한 기업설명회에서 2030년까지 해외 사업 매출을 3조원으로 끌어올리겠단 청사진을 제시했다. 현재 롯데쇼핑 해외 사업 매출 비중은 인도네시아가 70%, 베트남이 30% 수준이다.
지난 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약 7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인도네시아 발리주 덴파사르시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40분쯤 이동하니 고즈넉한 현지 마을 분위기와 상반된 대형마트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앞 대형 입간판에 'Bail's NO1 Shopping Destination'(발리의 첫번째 쇼핑 목적지)'라고 적혀있는 이곳은 지난달 21일 대규모 리뉴얼을 거쳐 새롭게 문을 연 '롯데마트 발리점'이다.
매장 내부는 "여기가 인도네시아 발리가 맞나"란 착각이 들 만큼 곳곳에 한국 마트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났다. 입구에선 "롯데~, 롯데~, 롯데마트"란 한국어 홍보 노래가 흘러나왔다. 초입에 위치한 즉석조리식품 매장 '요리하다 키친(Yorihada Kitchen)' 코너엔 밤 9시경 늦은 시간임에도 30여명의 고객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탁엔 이들이 주문한 김밥과 떡볶이, 닭강정 등 인기 K푸드가 올려져 있었다. 한 현지인 고객은 2대가 설치된 즉석라면 조리기 앞에서 신라면과 불닭볶음면 봉지를 뜯어 끓여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요리하다 키친은 그로서리 전문 매장으로 리뉴얼한 국내 점포에도 도입한 롯데마트의 델리 특화 매장이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첫선을 보인 요리하다 키친은 1년 만에 누적 방문객 100만명을 기록했는데, 발리에서도 인기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음식 조리는 현지인이 했지만 맛은 국내 마트와 큰 차이가 없었다. 롯데마트 푸드이노베이션센터장을 맡고 있는 강레오 셰프와 메뉴 개발팀이 만든 소스와 조리법을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송양현 롯데마트 인도네시아법인 영업본부장(상무)은 "요리하다 코너는 주말엔 대기줄을 서야 할 정도로 많은 고객이 찾고 있다"며 "K팝과 K드라마 등 한류 문화를 중심으로 확산한 K푸드의 높아진 인기를 현장에서 실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롯데마트 발리점은 그동안 도매점 형태로 운영해왔다. 리뉴얼 이전엔 'HORECA(호텔, 레스토랑, 카페의 약자)' 사업자를 위한 대용량 상품과 'Warung(현지 노점, 상점)'을 운영하는 업주들이 찾는 소용량 패키지 상품(사셰, Sachet)가 주력 제품이었다. 하루 평균 방문객은 400~500여명 수준이었다고 한다.
롯데마트는 약 3년간의 기획, 준비 단계를 거쳐 발리점의 대규모 리뉴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내부 논의를 거쳐 도매와 소매의 강점을 결합한 신개념'하이브리드형 매장'으로 새단장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국내 점포 그로서리 매장 특화 리뉴얼을 담당한 디자인, 상품기획 전문 인력이 새롭게 인도네시아 법인에 합류했다.
리뉴얼을 통해 약 2000평의 매장 내부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약 1500평은 K푸드와 고기, 과일, 채소 등 신석식품을 파는 그로서리 전문 매장으로 바꿨다. 인도네시아 현지 마트에서 구하기 어려운 호주산 와규, 삼겹살 등 냉장 육류를 비롯해 제철 과일이 진열돼 있었다. 이날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한 샤인머스켓은 당일 준비 물량이 완판됐다. 롯데웰푸드, 오리온, 크라운해태 등 국내 제조사가 만든 스낵류와 가공식품류를 한 데 모은 '코리아 존'에서 상품을 살펴보는 고객도 많았다. 카트에 가득 담은 고기와 신선식품을 차로 옮기던 한 현지인 고객은 "품질과 가격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매장에서 만난 40대 한국 교민도 "리뉴얼 후 처음 와봤는데 매장 내부가 전보다 훨씬 깔끔해졌고, 상품 수도 많아진 것 같다"고 호평했다.
롯데마트는 발리점의 도매 공간을 이전의 4분의 1 수준(500평)으로 줄였지만 내실은 강화했다. 호레카 고객에겐 대용량 삼겹살과 스시용 횟감 등을 최초로 선보이고 점포에서 직접 만든 빵을 대규모로 판매하는 '베이커리 팩토리'를 신설했다. 사셰 상품존은 발리 최대 규모로 조성하고 샴푸 등 일상용품 외에도 과자류까지 라인업을 확대했다.
특히 하이브리드형 매장 공간 혁신을 통해 발리점 내에 진열한 전체 상품 수(SKU)를 기존보다 70% 늘린 1만7000여개로 확대했다. 매장 내부엔 인도네시아 현지 마트에서 찾아보기 힘든 가로 2.4m, 세로 4.8m 크기의 대형 디지털 사이니지가 2대 설치됐다. 건물 내 H빔 구조물을 가리면서 주요 제품 홍보 영상까지 송출돼 '일석이조' 효과를 냈다. 선명한 디자인이 특징인 상품 구획 설명 표지판도 국내 점포에 설치한 최신 리뉴얼 버전을 적용했다. 이런 매장 내부의 디테일한 변화는 본사에서 파견된 디자인팀과 상품기획팀의 노하우가 담겼다. 인도네시아 첫 하이브리드 매장을 반드시 성공시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단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매장 앞 약 1만5000여평 부지엔 약 330대의 차량과 160대의 오토바이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대형 버스 주차 공간도 10대 추가했다. 기존 도매점 운영 당시엔 별다른 주차장도 없었고, 화물 트럭만 오갔는데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졌단게 롯데마트 관계자의 설명이다. 소매점은 물론 도매점을 찾는 고객들도 육류와 샤셰 등을 대량 구매한 뒤 요리하다 키친 존을 비롯해 '코페아 카페앤베이커리 (Koffea Cafe&Bakery)', '치즈앤도우(Cheese&Dough)' 등 점포에 입점한 F&B(음식료) 매장에서 커피와 빵 등을 즐겼다.
롯데마트 발리점의 초기 운영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송 영업본부장은 "당초 리뉴얼 이후 목표 매출 신장률은 20% 정도였는데 리뉴얼 개점 이후 일평균 매출 신장률은 이보다 2배 높은 약 40% 수준"이라며 "일평균 고객 수도 약 4000명으로 리뉴얼 이전보다 8배가량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흐름이라면 전년 대비 50% 이상의 기록적인 매출 신장률도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신동빈) 회장께서 앞으로 5년, 10년 뒤 시장 변화를 예측한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셨죠. 인도네시아 발리점 리뉴얼은 이런 경영 방침을 구체화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8일 롯데마트 인도네시아 발리점에서 만난 송양현 롯데마트 인도네시아 법인 영업본부장(사진)은 장기간 도매점으로 운영한 매장을 도소매 복합 '하이브리드 매장' 콘셉트로 탈바꿈한 배경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의 말대로 인도네시아 시장은 롯데 유통사업에서 '과감한 도전'의 상징이 됐다. 롯데는 2008년 10월 인도네시아 현지 유통사 마크로(Makro)가 운영하던 마트 점포 19개를 인수하면서 국내 유통업계 최초로 현지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국내 대형마트 사업이 급성장하던 시기여서 해외 진출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경영진도 있었지만, 신 회장은 인도네시아의 경제 발전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결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약 2억800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최저임금은 월 30만원대로 소득 수준은 아직 낮지만, 국민들의 식료품 소비 비중이 높아 그로서리 유통 채널의 발전 가능성이 높다. 미국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막삭스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50년 인도네시아 경제 규모는 세계 4위(현재 17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롯데마트는 올해 6월 기준 인도네시아에서 36개 도매형 매장과 12개 소매형 매장 등 총 48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진출 초기 19개점으로 영업을 시작한 뒤 교통과 물류 거점을 중심으로 매장 수를 점진적으로 늘려왔단게 송 영업본부장의 설명이다.
롯데마트가 인도네시아에서 도매와 소매 점포를 병행한 이유는 1만2000여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인도네시아의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수도 자카르타를 비롯한 대도시엔 일반 소매 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하이퍼마켓이나 기업형슈퍼 등이 활성화됐지만, 그 외 지역에선 현지 업체가 운영하는 중소형 편의점이나 Warung(현지 노점·상점) 위주로 유통 시장이 움직인다.
실제로 인도네시아는 발리를 비롯한 대도시 이외 지역에선 도매 매장에서 물건을 구매한 뒤 이를 섬이나 마을 등으로 가져가 다시 판매하는 소매 형식의 유통구조가 보편화돼 있다. 롯데마트가 그동안 대도시와 고속도로 지선 상에 도매점과 소매점을 적절히 늘려가는 영업 전략을 선택한 이유다.
송 영업본부장은 발리점을 첫 하이브리드 매장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핵심 물류라인 접근성이 뛰어나고 반경 3km 이내 약 12만명의 배우 수요와 월평균 120만명의 관광객이 공존하는 입지를 갖췄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발리점 영업 면적의 75% 이상을 소매점으로 바꿔 그로서리 특화 매장으로 전환한 건 지난해 1월 리뉴얼한 자카르타 간다리아시티점이 성공한 영향도 컸단게 송 영업본부장의 판단이다. 실제로 발리점도 간다리아시티점처럼 K푸드와 디저트를 매장 전면에 배치했고, 매장에서 직접 조리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개방형 주방을 도입했다.
2017년부터 인도네시아 법인에서 근무 중인 그는 하이브리드 1호점인 발리점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동료들과 함께 고군분투하고 있다. 롯데마트 인도네시아 법인이 위치한 자카르타와 발리는 비행기로 2시간 거리지만, 초기 운영 성과를 점검하고 신속하게 보완책을 마련하기 위해 직원들은 매장 오픈 이후 수시로 현장을 찾고 있다. 강성현 롯데마트 대표도 이번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각별히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 영업본부장은 "인도네시아 법인 팀원들과 강 대표가 모두 힘써 발리점 리뉴얼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며 "잠재력이 큰 인도네시아 유통 시장에서의 선제적인 투자는 우수한 실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