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일가 전문점의 원조 격인 다이소는 지난해 매출 4조원, 영업이익 4000억원 달성이 유력하다. 10년 만에 매출과 영업이익이 5배가량 커졌다. 예상 영업이익률은 약 10%, 국내 유통 대기업 영업이익률이 2~4%대란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다이소의 핵심 전략은 '박리다매'(薄利多賣, 이익을 적게 보면서 많이 판매한다). "10만명에게 10%를 남겨 파느니 100만명의 선택을 받겠다"는 게 창업주 박정부 회장의 지론이다.
과거 다이소가 매출 1조원 미만 중견기업이었을 땐 대형 유통사들이 경쟁 상대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고물가 국면에 소비침체가 장기화하고 중국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이 가성비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면서 입지가 흔들렸다. 그러자 이젠 대형 유통사들이 '싸고 좋은' 상품을 소싱하는 다이소 전략을 역으로 벤치마킹하면서 빈틈을 노린다. 저가의 다이소와 중저가의 대형유통사의 경계지점인 5000원 제품군에서 가장 치열한 결투가 벌어지는 형국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가성비 상품은 PB(자체 브랜드) 중심이었고 특정 가격대는 설정하지 않았다"며 "최근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높아지고 수요가 늘어난 점을 고려해 '5000원 이하' 제품 소싱에 공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5000원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곳은 다이소다. 1997년 국내에 첫 매장을 연 다이소는 전국 1500여개 매장을 근간으로 약 3만종의 상품군(SKU)을 유지한다. 소비 트렌드를 반영해 매달 수 백 종의 신상품을 선보인다. 일반 유통사는 제품 원가에 적정 이윤을 붙여 가격을 결정하지만 다이소는 이와 반대로 판매 가격부터 정한 뒤 상품을 개발한다. 5000원으로 가격을 특정한 제품 소싱에 노하우도 쌓여있다.
모든 상품을 100% 직매입하는 것도 다이소의 강점 중 하나다. 상품기획자(MD)가 전 세계 제조 현장에서 각 국가가 강점을 가진 품목을 발굴한다. 예컨대 대나무 제품은 베트남, 스테인리스 제품은 인도, 접시는 브라질, 도자기와 유리 제품은 터키 지역 전문 제조업체를 찾는 방식이다. 현재 중국, 동남아, 유럽 등 35개국 3600여개 업체에서 다이소에 상품을 공급하고 있다. 중간 벤더(Vendor)를 거치지 않아 그만큼의 마진을 가격 경쟁력으로 구현할 수 있다.
원가 절감을 위해 포장을 최소화하고 디자인을 단순화하는 것도 다이소의 전략이다. 컵의 손잡이가 필요 없는 디자인이라면 과감히 없애고, 양면 무늬는 한쪽으로 줄이기도 한다.
'가격이 싸면 품질이 나쁘다'는 인식을 없애는 것은 계속되는 도전이다. 다이소는 2018년 품질 전담 조직(TQC 본부)을 신설해 품질 관리 기준을 강화했다. 생산로트 단위로 시험 검사를 진행하고 유해 물질은 법정 허용치 50% 이내로 관리한다. 다이소 관계자는 "신규 협력사 발굴부터 제품 소싱, 제조, 입고, 사후관리까지 단계별 표준화한 제품 안전 기준을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균일가 시장을 확대하려는 유통가에선 유통 1위 이마트가 총대를 메고 5000원 전선에 나섰다. 새롭게 선보인 가성비 PB(자체 브랜드) '5K 프라이스'의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글로벌 소싱 역량을 총동원했다. 일례로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4980원짜리 스팀다리미는 해외소싱팀이 수년간 노력한 끝에 중국 저장성 소재 생산 업체를 발굴한 성과다. 5K 프라이스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5000원 이하를 주력으로 고객이 OK 할만한 가격을 내세운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마트 관계자는 "중국 캔톤페어, 홍콩 전자 박립회 등 행사에 주기적으로 참여해 관련 제품 가격과 품질을 비교했다"며 "직소싱 계약을 맺었고, 공장 규모나 안전 면에서도 다양한 검증 절차를 거쳐 혁신적인 가격에 선보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대형 유통사들의 균일가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소싱 능력에 따라 가성비 균일가 상품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사업 모델이란 게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일본도 과거 저성장 국면에 가성비 균일가 전문숍 시장이 열렸고 최근 우리나라의 5000원 최고가 마케팅도 이와 비슷한 흐름"이라며 "신선식품과 식료품 위주로는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대형마트와 편의점 업체를 중심으로 균일가 생활용품이나 뷰티 상품 판매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직장인 김규민(29)씨는 퇴근 이후 편의점을 찾는다. 과자와 치즈를 사서 '오지치즈후라이'를 만들어 먹거나 컵라면에 만두를 넣어 나만의 메뉴를 완성한다. 김씨는 "식당 물가가 부담스러워 시작했는데 이제는 직접 조합하는 재미 때문에 계속 찾게 된다"며 "5000원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한 끼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 대학생 이영민(23)씨 역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보고 새로운 '꿀조합' 만들기에 빠졌다. 요거트에 비스킷을 꽂아 냉장 보관하는 간단한 방식의 '요거트 치즈케이크'를 즐겨 만든다. 이씨는 "카페 디저트보다 훨씬 저렴한 5000원으로 맛과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편의점과 이커머스를 중심으로 '5000원의 마법'이 확산되고 있다. 고물가 시대에 적은 돈으로 최대의 만족을 끌어내는 '모디슈머' 트렌드가 다시 주목받는 모습이다. 간단한 재료를 조합해 새로운 메뉴나 제품을 만들어내는 '꿀조합' 소비가 SNS를 타고 빠르게 확산되며 유통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직접 만든 레시피가 상품으로 이어지는 사례까지 등장하면서 경험 중심의 소비 문화가 한층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3일 GS리테일에 따르면 '빠다코코낫' 매출은 올해 1월1일부터 지난 17일까지 전년 동기 대비 67.2% 증가했다. 디저트 재료로 활용되는 사례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트렌드를 반영해 편의점들은 아예 상품화에도 나섰다. CU의 그릭요거트와 비스킷 조합에서 착안한 '요거트 비스켓 케이크(4300원)'가 대표적이다. 재료를 따로 구매하지 않아도 5000원 이내에서 '모디슈머 레시피'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 '편의점 꿀조합'은 이외에도 많다. 과자와 치즈를 활용한 '오지치즈후라이(4890원)', 김치볶음면과 삼각김밥을 결합한 '오모리정식(4100원)', 컵라면과 만두를 더한 '사리곰탕 만두국(5000원)', 요거트와 비스킷으로 만든 '요거트 치즈케이크(4600원)'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5000원 안팎의 비용으로 간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트렌드는 이커머스 생활용품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그립톡(휴대폰 거치대)과 화장품 블러셔를 결합한 DIY 아이템처럼 실용성과 개성을 동시에 잡은 제품이 등장했고, 우유 용기의 뚜껑을 활용해 키링으로 재탄생시키는 등 일상 속 제품을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하는 사례가 생겨났다. 이같은 유행은 틱톡, 유튜브 등에서 5000원 내외 재료를 구매해 '가성비 꿀템'을 만드는 콘텐츠로 재생산돼 '재해석'과 '재창조'의 개념이 결합된 소비 문화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가격 대비 만족도를 중시하는 소비가 강화되고 있다"며 "여기에 재미와 개성까지 더한 경험형 소비가 핵심 트렌드"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