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전자상거래) 1위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29일 공정거래위원회 결정에 따라 국내법(공정거래법)을 적용받게 된 첫 미국 법인 CEO가 됐다. 공정위가 대기업집단 관리를 시작한 1986년 이후 40년 만에 첫 사례다.
이번 공정위의 결정은 법적 소송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쿠팡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김범석 의장과 친족은 한국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사익편취 우려가 전혀 없다"며 "향후 행정소송을 통해 성실히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미국 상장자 CEO인 김범석 의장의 총수 지정은 앞으로 다른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국내 투자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국내에 진출한 미국 등 해외기업 CEO들도 국내 투자 자산이 5조원을 넘게 되면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현재 애플코리아(2조6000억원) 마이크로스프트(1조원) 테슬라코리아(5709억원) 페이스북코리아(2869억원) 등이 국내 자산을 투자 중이다. 넷플릭스는 2023년 25억달러(3조3000억원) 투자 계획을 밝혔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넷플릭스 리드 헤이스팅스, 테슬라 일론 머스크 등도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오너여서 이들 기업의 국내 법인 투자 규모가 늘어나면 동일인 지정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양국의 통상 마찰과 정치적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공정위는 이날 "동일인 지정은 정당한 법 집행으로 미국이 문제 삼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이전인 바이든 정부부터 "미국인을 총수로 지정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우려를 표명해왔다. 최근 미국 공화당 내 '연구위원회(RSC)' 소속 의원 54명은 강경화 주미대사에게 한국 정부가 쿠팡 등 미국 기업을 차별한다는 취지의 항의 서한을 발송했다.
이는 쿠팡의 국내 자산 규모가 5조원을 넘은지 5년여가 흘렀지만 예외 사유를 적용해 법인을 동일인으로 설정한 가장 핵심적인 이유였다.
쿠팡Inc가 지금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각종 공시 의무를 이행하고 있어, 동일인 지정으로 한국 정부에도 공시와 자료 제출 등을 요구받게 된다는 '이중 규제' 지적도 있다. 실제로 쿠팡Inc는 SEC에 김 의장 개인은 물론 친족 등 특수관계자, 지분 5% 이상 보유자가 12만달러 이상 거래한 모든 기록을 공개 중이다.
현재 쿠팡 이사회엔 아샤 샤르마(Asha Sharma)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 겸 엑스박스 CEO, 페드로 프란체스키 브렉스 CEO 등이 참여 중이다. 김 의장이 총수가 되면 쿠팡과 별개로 운영하는 이들 미국 법인 CEO도 '동일인 관련자'로 각종 정보보고 제출 의무를 받게 된다는 게 쿠팡 측의 입장이다. 이는 사내이사가 주도하는 국내 상장법인과 달리 미국 상장사는 과반 수 이상이 사외이사(독립이사)로 구성돼야 하는 양국 이사회 운영 제도 차이에서 비롯됐다.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 지정 실효성도 논란거리다. 총수로 지정된 김 의장이 국내 대기업처럼 똑같은 의무를 지울 수 없다면 한국 기업들은 형평성 논란을 제기할 수 있고, 같은 의무를 지운다면 한미 외교통상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전문가들도 이번 결정에 우려를 나타낸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집단을 관리하기 위한 동일인 제도는 다양한 기업 구조가 등장한 상황에서는 동일한 잣대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동일인 제도는 과거 한국의 특수한 기업 지배구조를 전제로 형성된 것으로 기업 경쟁구도가 글로벌로 확장된 상황에서 갈라파고스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