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흑백요리사:요리계급전쟁' 시즌2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우승자 최강록 셰프의 겸손함과 진정성이다. 조림의 명인으로 알려진 그는 '조림인간' '조림핑' '연쇄조림마' 등의 별명을 얻으며 팬덤을 거느린 인기 요리사다. 그런데 그의 인기 요인은 여느 셰프들과는 다르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요리사들이 화려한 요리 퍼포먼스와 세련된 언변, 말끔한 외모나 패션, 미슐랭스타 경력 등으로 주목받은 반면 최강록 셰프는 소위 '4차원'으로 불릴 만큼 엉뚱한 화법과 어딘지 어수룩해 보이면서도 뚝심 있는 요리 스타일, 그리고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 겸손함으로 사랑받았다.
이런 그가 결승전에서 한 말은 많은 이에게 울림을 줬다. 대결 주제인 '나를 위한 요리'를 만들면서 최강록 셰프는 "조림요리로 유명해지니까 그동안 조림을 실제로 잘 못하면서도 잘하는 척, '척'하며 살아온 인생이 좀 있었다"고 말했다. 그토록 겸손해 보이는 사람이 '척'을 하며 살아왔다고 자기 고백을 하는 걸 보면서 부끄러웠다. 나는 얼마나 많은 '척'을 하며 살고 있는가, 어떤 가면을 쓴 채 연기하며 살고 있는가 생각했다. '나를 위한 요리'를 만드는 최종 미션에서 그는 자신을 위한 단 하나의 음식으로 '깨두부를 넣은 국물요리'를 만들었다. 십수 년 동안 매일 밤 홀로 남은 어두운 주방에서 스스로에게 '요리하는 사람'의 초심을 되새기게 해준 재료들로 만든 음식이다. 그야말로 '솔(soul)푸드'다.
미국의 미식 에세이스트 메리프랜시스 케네디 피셔는 "왜 음식에 대해 글을 쓰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배가 고프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가장 쉬운 대답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이 있다. 음식, 안전, 사랑이라는 3가지 기본적인 욕구는 뒤섞이고 뒤엉켜서 그중에 어느 하나만을 따로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내가 굶주림에 대해 쓸 때면 실제로는 사랑에 대해, 사랑에 대한 굶주림에 대해 쓰게 된다. 포근함에 대해, 포근함에 대한 사랑에 대해, 따뜻함에 대한 굶주림에 대해 쓰게 된다. 그것들은 모두 하나다. 빵을 먹고 와인을 마실 때면 거기에는 우리의 육체를 넘어서 있는 것들과의 영적 교감이 있다. 그것이 '왜 당신은 전쟁이나 사랑이 아니라 굶주림에 대해 쓰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내답이다"라고.
여러분의 솔푸드는 무엇인가. 솔푸드는 비싸고 귀한 음식과는 거리가 멀다. 최강록 셰프가 닭뼈와 순무 등을 우려낸 육수에 깨두부를 넣어 만든 요리도 그러하다.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와 어머니가 차려준 집밥을 먹고 목구멍으로 뜨거운 무언가를 삼켜본 사람이라면 솔푸드의 의미를 잘 알 것이다. 솔푸드에는 '정'이 깃들어 있다. 이 정은 한국적인 것이다. 감정인 동시에 관계의 방식이자 단순히 '좋아한다' '사랑한다'처럼 한번에 확정되는 호감이 아니라 오래 붙어 지내며 생기는 끈끈한 접착력, 즉 함께 살며 얽히는 마음이다. 때로 밉고 때로 곱고 때로 안쓰러우며, 같이 고생하고, 서로의 사정을 알고 부탁하고 미안해하고 또 도와주는 사람 사이에 생기는, 사랑과 우정과 의리와 연민과 미안함과 부채감과 슬픔이 섞인 혼합물이 바로 정이다.
세상의 모든 벼랑에서 추락해 만신창이가 된 채 당신의 집 문을 두드린 밤이 있었다. 지상의 모든 온기로부터 버려져 겁에 질린 유기견처럼 당신의 품을 파고들던 그 밤, 며칠을 굶었는지조차 모르는 내 남루한 허기를 채워준, 아니 나라는 한 사람을 슬픔의 벼랑 아래에서 끌어올려 껴안아준, 나를 살린 그 한 그릇의 라면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면 한 젓가락과 함께 울음도 후루룩 삼키면서 모든 '척'을 벗어버리고 오직 당신 앞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온전한 나일 수 있었다. 다시 먹을 수 있을까.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아… 그 라면, 그 뜨거운 국물, 아니 눈물, 당신의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