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권력 나누는게 공화주의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원·정치학
2026.03.06 08:46

국민의힘이 3월 1일로 예정했던 당명 개정을 지방선거 이후로 연기했다. 새 당명으로 '미래를 여는 공화당'(약칭 공화당)을 검토하면서 공화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게 사실이다. 이번 기회에 '공화'의 의미를 차분히 살려볼 필요가 있다.

민주공화국은 민주와 공화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는 체제다. 그동안 우리는 민주에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공화에 대해서는 충분히 주목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이 민주국(democracy)이 아니라 민주공화국(republic)인 이유를 이해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장동혁 대표가 '공화당'을 검토했다는 것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공화를 시대적 가치로 호명한 것은 빛이다. 그러나 윤석열과 절연을 거부한 채 '윤어게인'노선을 유지하면서 공화를 말하는 것은 자기모순의 그림자이다. 이는 이름으로 실상을 가리려 했다는 점에서 꼼수다. 왜냐하면 공화는 간판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화주의의 핵심은 권력의 독점과 사유화를 막기 위해 권력분립과 견제·균형을 제도화하고, 그 위에서 공동의 자유와 공공선을 추구하는 데 있다. 공화는 권력의 사유화를 막기 위해 권력을 나누고 견제·균형을 통해 상호 적대의 악순환을 제어하며 '비지배적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다.

특정 인물·계파가 국가를 사유화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차단할 때 시민은 자의적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는 장자크 루소가 말한, '법에 대한 복종을 통해 자유를 지킨다'는 통찰과도 일치한다. 사람의 지배가 아니라 법의 지배, 개인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민주공화국 헌법에 대한 충성이 공화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윤어게인'처럼, 윤석열에 충성하는 태도는 왕당파에 가깝다. 민주공화국 헌법이 아니라 개인에게 충성하는 순간, 공화는 무너진다. 공화는 군주를 교체하는 체제가 아니라 군주적 사고 자체를 극복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개딸'과 '윤어게인'이 맞서는 정치양극화와 정쟁 역시 공화와 거리가 멀다. '비명횡사'와 '이재명 일극체제'를 비판하면서, '장동혁 일극체제'를 세우려는 발상은 반공화적이다. '김어준–개딸' 팬덤을 비판하면서 '전한길–윤어게인' 팬덤을 동원하는 것 역시 반공화적이다. 인물 중심, 팬덤 중심의 정치가 반복되는 한 공동의 자유는 설 자리를 잃는다.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이 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 권력 분산과 견제 장치 없는 공화당은 공황당이 될 수 있다. 진정한 공화를 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특정 인물 중심 노선과 분명히 선을 긋고 내부 숙청 과정에서 배제된 이들에 대한 정치적 복권을 단행해야 한다.

둘째, 강성 지지층이 아니라 중도 성향의 국민을 대변하는 공당 운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미국식 예비경선제·원내정당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셋째, 국회 '다수결 독재'를 막기 위한 미국식 양원제와 연방제를 도입하여 지방분권 및 주민자치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주민자치적 검찰·사법개혁을 위해 배심원제를 도입해 시민이 기소(대배심)와 유무죄 평결(소배심)에 직접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원·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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