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문신잉크와 흙탕물

정심교 기자
2026.04.30 05:22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문신사법이 1년6개월 후(내년 10월29일) 시행된다. 이때까지 만들어야 할 하위법령(시행령·시행규칙)이 많지만, 이를 위한 정부-문신사 간 대화 테이블은 6개월 넘도록 마련되지 않고 있다. 문신 단체간 '장외 진흙탕 싸움'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당초 올해 1월 문신사·의사 등 15~20명으로 구성된 '문신사 제도 추진 민·관 협의체'를 출범해 하위법령을 만들려 했다. 문신사법에 명시된 △문신사 면허 △위생교육 등의 세부 규정이 하위법령에 담겨야 해서다. 하지만 이 협의체의 수장을 맡을 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이 공석 상태인데다, 문신사 위원 1명이 선발되지 않았단 이유로 5개월이 흘러갔다.

앞서 지난해 12월9일, 복지부는 문신·미용 단체장 17명과 만나 "문신사를 대표해 민·관 협의체에 참여할 1명을 알아서 선발해달라"고 요청한 후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이들 단체장 17명은 손으로 가리키는 황당한 인기 투표 방식으로 '5명'까지 추렸는데, 1명까지 추리지는 못했다. 한 단체장은 "각 단체장이 서로 협의체에 들어가려 하는 마당에 복지부가 자문위원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단체장들끼리 격론까지 벌어졌다"고 아쉬워했다.

복지부는 "단체장들이 1명을 선정해주지 않았다"며 협의체 구성이 늦어진 이유를 줄곧 단체장들 탓으로 돌렸다. 그런데 취재 결과, 이들 단체장 17명 중 상당수는 문신 시술 경험이 전무했다. 심지어 불법 제품(마취크림, 레이저기기, 문신을 지운다는 화장품 등) '판매업자'도 있었다. 문신 시술을 해본 적도 없는 비전문가부터 후보에서 솎아낼 수 있었는데도 복지부는 뒷짐만 지고 있었다.

이달 1일, 복지부는 기자에게 "민·관 협의체의 '축소판'인 '문신사법 시행 준비 자문단'부터 서둘러 꾸리기로 했다. 4월 3~4주차에 이 자문단을 출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문단은 현직 문신사 2명을 포함한 9인 체제로 꾸릴 예정이었다. 복지부는 "단체 연혁과 회원 수, 단체장의 문신 시술 경력 등을 기준으로 문신사 2명을 자문위원으로 선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자문단마저 발목 잡혔다. '미용문신' 관련 27개 단체가 소속됐다는 한국미용문신연합회가 '복지부가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채 특정 단체장을 자문단 문신사 위원으로 선발했다'며 '추가로 더 뽑아야 한다'는 취지로 이개호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과 함께 기자회견까지 열면서다.

이에 복지부는 "이 의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이기도 해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자문위원을 1명 더 뽑아달라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번엔 두피문신 단체들이 나설 태세다. '국회의원을 섭외해서 기자회견만 열면 두피문신사도 자문단에 들어갈 수 있다'는 공감대가 생겼다는 후문이다.

복지부가 애초에 '자문단 문신사 위원 선정기준'을 제시했다면 어땠을까. 문신 단체장 사이에선 '이번 자문단 입성이 '법정단체장'이 되는 공식 루트가 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돈다. 정부의 뒷짐 속 '문신 잉크'를 쥐어야 할 문신사 30만명에게, 시술받는 국민에게 '흙탕물'이 튀고 있다.

정심교 머니투데이 바이오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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